사도적 자생 교단이라는 사실과 신사참배에 있어서 가장 먼저 격하게 반대한 강경교회의 순교적 영성 그리고 엄혹한 일제 앞에서 교단이 해산되기까지 지킨 성결 신앙을 우리는 매우 자랑스럽고 귀한 영적 자산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런 교단의 긍지와 자긍심에 상처를 입히고, 성결인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지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이런 잘못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기에, 총회에 즈음하여 이런 상황을 알리고 이번 총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의미 있는 결정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천주교와 감리교는 1936년, 장로교는 1938년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단은 총회에서 결의하지 않았고 교단적으로 신사참배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이나 개교회의 일탈까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이 교단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신사 참배한 것처럼 말하는 글이 있다면, 이것만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한일성결교회 공동역사연구회 4회 포럼 ‘1930~50년대 한·일 성결교회 역사 조망’에서 교단의 박 교수는 “성결교회가 신사참배에 동참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제 말 광주지방법원 소송기록에 나타난 총독부의 한국성결교회의 탄압’에서는 감리교와 성결교회를 포함하여 대부분 한국교회가 일제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신사참배를) 수용하였고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것이 장로교라 말합니다. 교단의 배 교수는 한국성결교회가 별 갈등 없이 신사참배를 수용하였으며,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 문제에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합니다. 교단의 허 목사는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재형성’에서 그리고 장로교 김 교수는 ‘한국기독교와 신사참배 문제’에서 우리 교단이 신사 참배한 것처럼 말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단의 이 목사가 자신의 시무교회 카페에 우리교단이 1935년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고 그 일시까지 특정해 말하는 점입니다.

교단 내 인사의 글은 비교적 우리에 대해서 취약한 외부 인사들에게 주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단을 살피고, 좋은 전통을 계승하여야 할 교단 내 인사들이 하지도 않은 것을 한 것처럼 말하여 교단 위상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단이 신사 참배한 것처럼 말하는 교단 외부의 글들을 보면 근거를 대지 않고 다른 교단과 우리 교단을 도매급으로 엮어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리교 역사학자인 이 모 교수도 성결교회도 다른 교단들처럼 신사참배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기독교 원로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미래교회 포럼에서 발표한 ‘신사참배와 한국교회’에서 감리교와 장로교의 신사참배 결의에 대해서 말하지만 성결교회의 신사참배에 대해선 말하지 않습니다. CBS의 송주열 기자는 ‘한국교회 아킬레스건 신사참배 회개’라는 기사에서 성결교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다 순교한 이들만 50여 명에 이르고 1943년 일제에 의해서 교단이 강제해산 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말하며, 우리가 아는 대로 교단의 자랑스러운 점을 부각해 말합니다.

이번 성총회에서 우리 교단이 신사 참배한 것처럼 쓴 글들을 찾아 수정하게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사참배에 대한 우리 성결교회의 모습과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