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기독교인 피해 원인은 ‘이념 갈등’
3년 만에 현장 진행 박명수·장금현 박사 발제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창훈 교수)가 지난 4월 25일 본관 소강당에서 ‘지역사회(로컬리티)와 한국전쟁 그리고 기독교’를 주제로 제27회 영익기념강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그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3년 만에 마련된 이번 기념강좌에서는 6.25 전쟁 당시 논산과 군산지역 기독교인들의 수난사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첫 발제자로 나선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는 ‘논산군 성동지역의 근현대사와 6.25 전쟁,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피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6.25 전쟁 당시 성동지역의 피해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좌익이념을 받아들인 지역의 일부 유지들이 소작인과 머슴, 서자들을 동원해 공산주의 혁명으로 자행한 것이다. 둘째, 전통적인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정치적 성향의 변화는 가문이 아닌 개인 혹은 가정의 영역으로 전이돼 좌경화 및 우경화가 나타났다.

  셋째, 당시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우익세력과 결합돼 있었는데, 좌익세력들에 의해 위협적인 세력으로 간주돼 잔인한 학살이 발생했다 등이다. 박 박사는 “성동면은 해방과 6.25 전쟁 기간을 통해 모스크바라고 불렸던 지역으로써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이 매우 강하게 일어났던 곳이다”라며 “사회주의 운동은 지역의 지주층과 연대해 세력을 확장시켰는데, 해방 이후에도 강력한 좌익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6.25 전쟁 당시까지 지역 안에서 좌우의 갈등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독교인 피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인민공화국 건설에 방해된다고 생각했던 좌익들의 이념에서 찾아야 한다”며 “당시 성동면은 일제시기부터 6.25 전쟁 당시까지 좌익사상이 강했다. 좌익들은 인민공화국을 만들려고 했고, 여기에 반대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박 박사는 “만약 이념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큰 희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6.25 전쟁 당시 민간인 살해 문제에서 이념을 제외하고 단순한 반상, 씨족, 종교의 갈등으로 축소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자로 참여한 장금현 박사(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는 ‘군산지역과 한국전쟁:기독교인 집단희생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군산은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극에 치달아 다수의 희생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군산지역 피해 교회의 대표적인 특징을 분석한 장 박사는 “우익 인사 혹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됐으며, 월남한 기독교인들도 정치적 활동 기록이 없었지만 인민군들이 월남인들을 반동분자로 낙인찍어 구금, 구타, 살해 등을 자행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좌익들은 숨어서 우익인사들의 학살을 자행하면서도 기독교인이었던 자신들의 친인척들을 도와 큰 해를 받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집단희생된 교회와 유족들은 죄악들과 부역자들에게 크게 보복하지 않았다”며 “증언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당교회 신자들의 보복은 없었고, 가해자 후손과 피해자 후손이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했다”고 설명하면서 군산지역 기독교인들의 피해는 이념과 같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강좌 전 드려진 예배는 박창훈 교수의 사회로 박문수 박사(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의 기도, 전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장 김헌곤 목사의 ‘6.25 전쟁 피해와 한국교회의 사명’이란 제목의 설교, 김광동 위원장(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동영상 축사, 고 김영익 집사의 장남 김승환 집사(장충단교회)의 인사, 김헌곤 목사의 축도로 드려졌다. 강연 논찬에는 윤정란 교수(숭실대)와 박종현 교수(연세대)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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