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훈 목사 (청주지방 · 서문교회 원로)

요즘 매스컴에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흔히 접하게 되는데 이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문구이다.

고대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서 승전하고 돌아와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 한 사람을 마차에 함께 태우고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그 이유는 ‘오늘은 승전했지만 내일은 죽을 수도 있기에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한 번도 진정으로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가치있는 삶을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의 죽음은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데다가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올바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무신론자 니체도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다 결국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눈을 부릅뜬 채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그는 이십 대에 “알 수 없는 신이여!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신이여! 눈물의 강이여! 마음의 불길이여! 생명의 약탈자여! 최후의 고통이여! 최후의 행복이여!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라고 절규하듯 시를 썼다.

미국의 인디애나 주에 있는 200년이 넘은 공동묘지에 “길 가는 나그네여 바쁜 길 잠시 멈추고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나도 당신처럼 살아 있을 때가 있었소. 그러나 당신도 언젠가는 나처럼 지금 내가 묻혀있는 이 마을로 오게 될 거요. 그때까지 죽을 준비를 잘하고 내 뒤를 따라오시구려”라는 묘비명이 적혀 있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모든 영광의 길은 결국 무덤으로 뻗어져 있다”고 했다. 이것은 세상에 있을 때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지난해 소천한 이어령 교수는 6세 때 ‘메멘토 모리’를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생전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 『메멘토 모리』에서 “인류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이다. 오직 죽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또 유고 시집『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서문에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영혼의 길에 다다르기 위해서 피조물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성서에는 죽음에 관한 구절이 많이 있지만 누가복음 12장 15~20절의 부자에 관한 비유를 보면 우리의 삶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는 진정한 생명으로 나가는 부활을 체험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데, 항거할 수 없는 이 길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서 남 탓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나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할 때, 죽음이라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이 길에서 단 1초도 허투루 살 수가 없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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