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즉 고통의 세월이라고 여겼던 애굽에서의 노예의 세월은 의미 없는 허송의 시간 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홍해를 건너면서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광야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는데, 본래 하나님의 계획은 1년 남짓 행군을 한 뒤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나안을 정탐하고 온 이들의 부정적인 보고와 악평으로 그것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고 애초에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39년여의 세월을 두려움과 염려로 보내고 나서야 드디어 요단강 앞에 서게 되었다. 

애굽의 왕 바로는 순순히 이스라엘을 놔주질 않았다. 결국 열 가지의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바로는 이스라엘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다시 애굽의 군대를 총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추격했다. 또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아말렉과 같은 적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 바다가 갈라졌고,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말렉을 무찔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과 함께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모세가 한 일, 여호수아가 한 일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말씀은 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홍해를 건널 때와 요단을 건널 때의 이스라엘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홍해를 건널 때는 아무것도 갖추어진 것이 없이, 그저 서둘러 건너야만 했다. 그런데 요단 앞에 다다른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군대 편성과 각 지파별 위치와 역할 등이 임명된 상태였다. 이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법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한다. 그들 앞에 있는 강물은 여전히 많은 양이 흘러 내리고 있고,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발을 내디뎌 요단을 건넜다.

출애굽 한 것만으로 모든 구원이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은 가나안에 안착해야 진정한 구원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기적을 체험했다고 볼 수 없다. 이처럼 광야를 걷고 있는 우리도 무언가 체험을 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모든 게 다 끝난 듯이 자랑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제사장들이 서 있는 곳은 마른 땅이다. 그들의 믿음과 순종의 결과로 준비되어진 길이다. 신앙의 본궤도에 들어서야 실질적인 결실을 추수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바로 제사장의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곧 목양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제사장들은 법궤를 매고 있다. 법궤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말씀과 능력, 그리고 은혜, 곧 하나님의 임재다. 오늘날의 교회를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사도들, 보내신 목사와 교사들을 통한 말씀의 지도와 신앙 양육은 생략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신 목적이 분명하시다. 출애굽이 전부가 아니다. 광야는 과정일 뿐이고 당신의 백성들 모두를 가나안에 들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는 광야의 끝인 요단을 건너야 한다. 바로 제사장이 매고 있는 법궤를 따라나서는 것이다. 전적인 하나님 임재를 따르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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