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16~18)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는 실로 엄청난 역사 하심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성도들의 신앙의 행위는 결코 정적일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주님도 보여주고 계신다.

본문에서 주님은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의 유대 율법을 어기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지만, 주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결국 우리의 논지는 분명하다. “성부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성자 하나님께서도 일하시니 우리 또한 일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역사는 태초를 창조하신 일곱째 날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의 날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이고 완료이시지만, 만물에 대한 다스리심과 섭리하심은 계속하시되,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역사하심은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 

로마서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말씀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모든 사역을 완수하셨지만, 지금 쉬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간구하고 계심을 알려준다.

성도의 신분은 이중적이다. 아직 이 땅에 살지만 이미 천국 시민이고, 자녀이면서 또한 종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신분과 자녀의 신분만 고집하다 보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과 종의 사명을 망각하여 주님께 책망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성도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일까? 바로 주의 일과 나의 일 중 당연히 주님의 일이다. 또 세상 일과 교회의 일 중 당연히 교회의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오늘날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의 일보다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의 삶을 학개 1장 6절의 말씀을 통해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었도다” 정말로 살다 보면 원인을 모를 때가 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미흡하거나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 1:7) 삼위 하나님께서 오늘날 너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데 오늘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이것을 우리 신앙에 적용을 시켜보자. ‘주님께서 왜 나에게 믿음을 주셨을까? 주님은 왜 나에게, 우리 가정에게 믿음의 기회를 주셨을까?’ 잘 모르겠는가? 당연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주께서 무엇을 보여주시겠는가! 일꾼은 충성으로 말하고 증명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선언하신다. “나도 일한다” 이 말씀에 우리가 고백하고 결단하고 헌신해야 한다. “저도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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