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호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 신학과)

조성호 교수(서울신학대학교 · 신학과)
조성호 교수(서울신학대학교 · 신학과)

창세기 1장 27절에 나오는 ‘형상’(Image)이라는 단어의 원어는 ‘םֶלֶצ’(ṣelem)이며, 그 의미는 ‘그림자’(shade)로 알려져 있다. 이로부터 ‘유령, 환영, 형상’ 등의 용례로 확장되고, 형용사로 활용될 경우 ‘단지’(mere) 또는 ‘빈, 공허한’(empty)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전문성 높은 구약학자들에게는 확증편향이나 과잉 일반화로 비칠 의견일지 모르지만, 목회와 신앙적 차원에서 단어가 주는 교훈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유추하고 싶다. 먼저 그림자가 몸체와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근본적 목적과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 또는 동거하는 삶에 있다는 해석이다. 달리 표현하면 삶의 근본 토대와 궁극적 방향 그리고 최고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의미한다. 여타 종교는 물론 자본과 권력, 명예 등 세속사회에 현존하는 기준과 지침이 절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음은 당연하며, 심지어 교회 안의 제도와 교리가 하나님을 수단으로 격하시킬 수 없음을 강조하는 신학적 암시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상정할 수 없는 본성을 내세움으로써, 인간 존재가 태생적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발로로 볼 수 있다.

그림자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르침은 불완전하고 부족하며 공허한 인생에 대해 긍정적인 실존적 평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림자는 본체와 빛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림자의 형체는 본체로부터 유래하며, 본체를 비추는 빛이 실재할 때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림자의 속성에는 처음부터 제한적인 한계가 내재한다. 하지만 그런 수동적 본질이 하나님의 창조와 연결되면서, 주인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놓는 자발적 내려놓음과 나눔, 자율적 섬김으로 이어지는 논리로 발전한다. 즉 그림자로서 창조된 인류를 하나님 창조의 최고봉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사회 하부층이나 주변부로 밀려난 인생을 긍정적 가치로 바꾸는 극적 반전이 가능함을 뜻한다. 이를 통해 아무리 뛰어난 성취와 업적이더라도 그 자체로 목적의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자기를 낮추어 섬김과 박애를 실천하는 삶에 절대 가치가 부여된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본체이심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사건처럼, 그림자 내면에는 약자를 찬탈하고 성공을 뽐내는 자기중심적 성향의 해방을 넘어 적극적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협력하는 사순절과 십자가 정신이 잠재하는 셈이다. 

세속사회의 원리는 그림자 같은 삶을 회피하고 지양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주목받고 인기를 얻으며, 그로 인해 많은 소유와 높은 명예를 얻으려는 경향이 일반적 대세이다. 그러나 그림자라는 심오하면서도 묘한 표현 안에는 그런 사회적 요소를 유혹으로 평가하는 계시적 선언이 담겨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수효가 적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신 7:7), 제자의 이름으로 작은 자 중 한 명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준 자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으며(마 10:42), 크고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요일 4:20).

그렇다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림자에 담긴 원리에 순종하면, 최초의 복과 결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고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까닭이다.(창 1:28). 그런 측면에서 많은 이가 그림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앞선 나머지 서둘러 무대 중앙과 높은 상석을 고집하는 선택이 진짜 문제이며 성경에 대한 오독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않으니 결국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몸소 모범을 보이셨고, 그로부터 그림자로서 살아갈 인류의 운명은 더 명확해졌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진심을 외면하는 오해와 오류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어서 골치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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