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이니 천지니 하는 것은 저는 모릅니다. 제 눈에 띄는 것은 오직 인간들이 고생하는 꼴뿐이죠. 이 지상의 어린 신(神)들은 언제나 같은 꼬락서니로 있어 천지개벽하던 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기묘한 존재이죠. 차라리 인간들에게 하늘의 불빛 따위는 주지 않았던들, 좀 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놈들은 이것을 이성(理性)이라 부르고 오직 그것을 다른 짐승보다도 더욱 짐승답게 사는 데만 이용하고 있읍죠”(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와 같은 인간의 본성을 약점으로 잡아 파우스트를 자신의 노리갯감으로 삼았다. 파우스트에서 인간의 본질을 확인하는 신앙인들은 계속해서 질문했다. “욕망없는 인간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결론이며 욕망과 신앙이 충돌하는 실존적 딜레마를 해결할 길을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다.


▨… 2월이다. 지방회가 열리고 있고 각 지방회는 총회 임원 후보자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방회 임원은 대부분 단수 입후보자의 무투표 당선으로 확정되는 것이 차츰 관례화하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차례는 온다는 기다림이 느긋하기만 하다. 그러나 총회 임원 후보자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릇의 크기도 다르고 그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길도 다른데 성결인이라면서도 욕망만은 그 크기에서 차이가 없다. 그 모습이 한 치 걸러 두 치라면 표현이 조금 심한가.

▨…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 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 이기호가 조금 부끄럽도록 우리의 이성을 지적했다면 장-자크 루소의 지적은 더 아프다. “사람들은 모인 인민이 참된 기독교인들이라면 상상 가능한 가장 완전한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가정에서 다음과 같은 큰 어려움만을 본다. 참된 기독교인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사회가 아닐 것이라는 점 말이다.”(『사회계약론』) ‘참된 기독교인’의 한계, 너무 슬프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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