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통해서 일할거야!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말을 건네십니다.
나 아니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한계와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 한 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맞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내 기준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대로 예수님을 대입하여 신앙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내 삶의 방식을 맞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기다리시고, 참아주시고, 기회를 주시며, 때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지요. 왜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인내와 기다려 주심이 큰 사랑과 은혜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저렇게 자기 멋대로 사는데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의 속이 타버릴 때가 많습니다. 악인들 때문에 착한 사람들이 피해 입고, 억울하게 한탄하며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끝까지 기다려 주심과 기회를 주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좋은 사례가 성경의 요나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세우신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눈에 보이는 현실 앞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할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요나의 한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가페를 부어주시지 않으면, 누구나 함부로 그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였던 요나였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요청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반항을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데 다시스로 갔으며, 물고기 배 속에서 참회하고 새롭게 되었지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결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자, 속상해서 박넝쿨 안에서 불만을 가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선지자가 회개의 역사를, 부흥의 역사를 직접 목격하고 있는데도, 마음에 내키지 않아 방관자가 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러한 요나에게 관심을 표현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집요하리만큼 관심을 표하시고 말씀을 건네십니다. 박 넝쿨의 잎사귀가 사라진 것을 보고 화를 내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요 4:10-11). 이것이 요나서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하나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도록 끝을 맺고 있지만, 요나서 4장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지 못한 요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요나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에 대한 강조입니다. 바로 요나지요. 비록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요나에게 말씀을 건네고 끝까지 관심의 싸인을 보내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일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나의 재능의 특별함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선지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자라도,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고쳐 세워서 일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너를 통해 일할거야!’ ‘너 아니면 안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사랑 고백을 진하게 받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지금 하나님은 그 사랑을 관심으로, 기다림으로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은 지속되고 있으며,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요나서는 4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 진행형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도, 또다시 배신한 베드로와 제자들인데, 예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먼저 건네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최고로 표현하신 방법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기”(롬 5:8)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셨으며 말을 건네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나 아니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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