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하루 앞둔 이브, 거리는 제법 한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은 특별한 날인 만큼 연인들은 구색을 갖춘 가게와 장소로 이미 떠난 탓일 테고,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은 집에서 오랜 만에 찾아온 휴식의 여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곳이 있다. 바로 행복한교회다. 행복한교회는 창립 때부터 소외되고 가장 낮은 곳,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웃들에게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크리스마스 이브에 새벽송으로 전하고 있다. 지난 12월 24일 저녁 7시, 우리는 행복한교회의 새벽송에 참석하기 위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행복한교회가 위치한 미추홀구는 작고 오래된 주택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 언덕이 너무 높은 곳은 눈 내리는 겨울엔 차도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그곳에 사랑의 온정이 필요한 이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구슬땀을 흘리며 성도들이 며칠 전부터 손수 준비한 반찬과 곱게 포장된 과일상자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케이크, 생계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준비된 생필품 박스를 가지고 성탄노래를 부르며 집집마다 찾아가는 새벽송. 힘찬 구호를 외치고 출발한 성도들에겐 거리를 비추는 초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가로등이 꺼져 온통 검게 물들어가 빛이 없는 어두운 거리들의 이곳저곳을 비추며 힘차게 울려 퍼지는 캐럴송. 차갑던 도시에 따뜻한 희망의 순풍이 부는 듯 했다.

또한 산타복장을 한 청년들의 “메리 크리스마스마스”라고 인사하며 곱게 포장한 수제사탕을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나눠줬을 때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첫 번째 방문한 최홍열 할아버지는 3일 전 눈이 많이 내린 날 그만 계단에서 넘어져 그때부터 집 앞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산타의 크리스마스 인사와 아름다운 성탄 합창,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전해주었을 때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후 노부부 내외가 빙판과도 같은 계단을 내려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염화칼슘을 구해 계단에 뿌리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매서운 겨울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던 부부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반드시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하니까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 번째 집 지역주민 A씨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도 대답도 인기척도 없이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가려는 찰나 통화가 되었고 들어와도 된다는 말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방안에 거동이 불편한 채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A씨를 발견했다. 다가가 선물을 전하며 캐럴송을 불렀을 때 오열을 하는 A씨. 그 울음소리는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오히려 위로가 되고 울림이 되는 따뜻한 소리처럼 들렸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집은 난민 자격으로 한국에 오게 된 우크라이나 학생의 집이었다. 러시아 문화권인 학생에게 러시아어로 준비한 성탄노래와 케이크 과일상자를 전달했을 때 학생은 미숙하지만 진심이 담긴 한국어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쳤다. 올해 8월경 한국에와 문화의 차이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힘들었던 그는 처음으로 한국 사람의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구글 번역기로 번역된 서툰 한국어로 써진 문자가 온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지금은 명맥이 끊어져버린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새벽송 문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한 조 뿐만 아니라 다른 다섯 조의 새벽송이 모두 마친 시각은 말 그대로 새벽 2시였다. 몇시간 넘게 거리를 누비느라 성도들의 두 볼은 모두 빨갰고 다소 지친 기색이었지만 교회 1층에 모여 자신들이 느낀 감동과 은혜를 밤새도록 나누는 모습을 보고 나는 돌아오는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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