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3:14~17)

어느덧 1년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의 7월은 주일로 시작되고 7월의 첫 주일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정확하게 1년의 절반이 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한 일주일이었습니다. 당연히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킬까를 생각했지만 1년의 절반을 별로 이룬 것 없이 허비해버렸다는 자책이 한없이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이러다가 올 한해를 그냥 보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세 번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교병의 절기는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초막절, 장막절 등으로 불리며 한 해의 모든 추수를 마치고 감사하는 동시에 초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40년의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신 16:10) 초실절(출 34:22)로 불리기도 하며, 신약의 오순절에 해당합니다. 팔레스틴 지역은 봄에는 주로 보리와 밀, 즉 곡물을 추수하고 가을에는 포도와 올리브 같은 실과를 주로 수확합니다. 그러니까 봄에 추수하는 곡물이 일년 동안의 주 식량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맥추절 역시 구약에서는 모세의 율법 수여, 신약의 오순절로 이어지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절기는 맥추절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생뚱맞게도 ‘보리’와 같은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금은 보리 농사를 지으려는 농부가 많지 않지만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보리는 민초들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고귀한 작물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추수한 곡식은 바닥나고 산야의 나물과 쑥으로 나른한 봄을 연명하다가 보리를 추수하여야 비로소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배고픔을 잊은지 오래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하여도 ‘춘궁기’ ‘보릿고개’라는 말이 연례행사처럼 가난한 민초들의 곁을 고통스럽게 스쳐 지나갔는데, 굶주림의 고통 속에 맞는 보리 추수는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민초들에게 보리만큼 고마운 곡식이 또 있었을까요? 보리는 추운 겨울을 헤치고 나와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희망과 용기와 인내의 상징이었으며 지친 여름을 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보리의 이런 면이 보리와 같은 목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심령의 갈급함을 채워주고,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는 목사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영적으로 심각한 기근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리저리로 방황하는 영혼들의 물결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에 상처 입은 심령들의 아우성이 있습니다. 고통의 현실 앞에 주저앉아 눈물짓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보리같은 목사, 보리같은 성도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리 농사를 많이 짓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변함없는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바로 끊임없이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보리농사도 짓지 않고 도심에서 사는 사람에게 왜 맥추절을 지키라 하느냐고 따지지 맙시다. 추수감사절이 있는데 무슨 놈의 맥추감사절이냐고 불평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의 삶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보리와 같은 목사, 보리같은 성도가 됩시다. 이것이 금년 맥추절을 지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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