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베들레헴에 평화가 임했다

12월 24일 아기 예수 탄생 축하
말구유 광장서 소리치며 환영
절정은 자정에 열리는 축하 예배

 

매년 성탄절 전야인 12월 24일 베들레헴은 수많은 순례객으로 북적인다. 

성탄 순례는 예루살렘 성묘교회로부터 시작되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며 베들레헴 말구유 광장(the Manger Square)까지 이어진다. 행진에 동행한 순례객들은 베들레헴에 도착한 후 그 밤 내내 말구유 광장에서 힘껏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 축하는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옆 로마가톨릭 성 캐터린교회(St. Catherine Church)에서 자정에 열리는 축하 미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 갈등이 늘 첨예하게 벌어지는 팔레스타인들의 거주지 베들레헴은 성탄 기간만큼은 평화롭다. 성탄절 아기 예수는 기독교도들 뿐 아니라 유대인에게나 팔레스타인 아랍인 모두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예수 탄생 교회 성소 아래 예수 탄생 동굴(은색 별표가 예수님 탄생 자리)
예수 탄생 교회 성소 아래 예수 탄생 동굴(은색 별표가 예수님 탄생 자리)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은 역사가 깊다. 이집트의 고대 아마르나 문서에는 베들레헴이 이집트에 충성하는 예루살렘 통치자 압두-헤바(Abdu-Heba)가 다스리는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도 이름은 ‘베들레헴 ’과 비슷한 비트-라흐미(Bit-Laḫmi)로 불렸다. 그러니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자체는 오늘날 ‘빵의 집’(Bet Leḥem)이라거나 혹은 ‘고기의 집’(Bayt Laḥm)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유서가 깊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 한 족속의 거주지가 되었고 위대한 왕 다윗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다윗의 후손인 요셉은 그래서 본적지 베들레헴을 방문한 것이다. 만삭이던 어린 아내 마리아는 거기 동굴로 된 집 한쪽 가축우리에서 아기를 낳아 돌로 된 구유에 두었다.

 

예수탄생교회 입구 겸손의 문
예수탄생교회 입구 겸손의 문

사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을 의심해 왔다. 이런 질문은 초대교회를 이어 원시 교회에서도 있었던 모양이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the Martyr)은 그래서 주후 155년경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이 믿기지 않는다면 베들레헴에 가서 거기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그 동굴’(the cave)에 꼭 가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도 이런 말을 남겼다. “베들레헴의 그 동굴은 그분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고, 동굴 안 구유는 그분이 강보에 싸여 계셨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역시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동굴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주후 2세기를 넘어서면서부터 그 일대는 이방신을 숭배하는 곳이었다. 주후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는 바르코크바 전쟁을 승리하고서 예루살렘 골고다에는 아프로디테 신전과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지에는 아프로디테의 연인 아도니스(Adonis)를 숭배하는 정원(grove)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방문은 이어졌다. 심지어 일대 여러 동굴에 머물며 기도하는 수도사들은 생겨났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를 다시 통일하면서 상황을 달라졌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아들의 권력에 힘입어 화려한 성지 순례를 나섰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곳곳 예수님의 흔적과 유적을 찾아내고 곳곳에 기념교회를 세웠다.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동굴도 방문했다. 콘스탄틴 황제는 어머니 헬레나를 위해 예수님 탄생 동굴 위에 크고 멋진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를 지었다. 교회는 326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339년에 가서야 완공되었다. 베들레헴에 ‘탄생교회’가 지어진다는 소식은 로마제국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교회가 완공되기도 전에 순례가 시작되었다. 공사가 한창인 333년 지금의 프랑스 보르도(Bordeaux)로부터 출발한 순례단이 베들레헴에 다녀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을 다녀가는 전 세계 순례객에게 중요한 방문지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콘스탄틴의 예수님탄생교회는 6세기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란 때 파괴되어 버렸다. 일단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안 황제는 그것을 원래 모습으로 다시 복구했다. 그러나 이후 이슬람 세력이 팔레스타인 일대를 장악하면서 교회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다행히 나중에 정복자 샤흐르바라즈(Shahrbaraz)의 보호로 교회는 살아남았다. 교회의 벽에 그려진 세 명의 동방박사가 자기들 페르시아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은 탓이었다. 유럽의 십자군 시절과 이후 이슬람의 아이유브 왕조(Ayyubid Dynasty)를 비롯한 몇몇 이슬람 왕국을 거치는 내내 교회는 일련의 협정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교회에는 기독교 세계의 각기 다른 종파들이 들어와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예수탄생교회 내부 전경
예수탄생교회 내부 전경

예수님 탄생 자리 위에 세워진 유스티니안 예배당은 그리스 정교회와 동방정교회 몫이 되었다. 교회 남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수도원을 세워 들어왔고 북쪽에는 프란시스파 가톨릭이 들어와 성 캐터린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문제는 오스만 제국 시절이었다. 이 시기 교회 순례는 허용되었지만, 여러모로 힘 있는 이슬람인들에게 훼손되었다. 이슬람인들은 내부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등 교회를 함부로 여겼고 심지어 자기들의 연회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교회를 지키는 수도사들과 베들레헴의 기독교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입구에 두꺼운 벽을 쌓고 지금 ‘겸손의 문’(the Door of Humility)이라고 불리는 작은 문을 만들었다. 그렇게 누구든지 교회에 들어오려면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했다. 

오스만제국 말기 팔레스타인 일대에는 기독교 서방의 고고학자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베들레헴에서는 도시 동쪽 아래 경사면에서 예수님 시대 것이 확실한 주거지들이 발굴되었다. 오랫동안 ‘목자들의 들판’(the field of the shepherds, Beit Sahur)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원형이 잘 보존된 사람들의 거주지와 더불어 초기 동굴교회의 유적을 발굴했다. 

그리고 이곳이 초기 교회 시대부터 천사가 나타나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을 알린 곳을 기념하고 예배하던 곳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로마 가톨릭는 당장 이곳에 교회를 세웠고 순례객들은 탄생교회를 방문한 뒤 이곳 목자들의 들판으로 와 예수님 탄생 소식을 전한 천사와 그 놀라운 소식을 들고 탄생지를 처음 방문한 목자들을 기렸다. 

사람들은 순례를 위한 여러 교회와 시설들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이곳을 방문했고 예수 탄생지를 지켰다. 그 가운데 가장 멋진 한 사람은 4세기 제롬(Jerome)일 것이다. 제롬은 로마의 대주교 자리를 두고 벌어진 경쟁에서 탈락한 뒤 스스로 세상 중심으로부터 물러나 이곳 베들레헴에 왔다. 그리고 예수탄생교회 아래 지하 동굴 한쪽에 머물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전념했다. ‘벌게이트 성경’(Vulgate Bible)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제롬은 예수탄생교회 지하 동굴 하나를 선택해 30여 년을 머무르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경을 번역하고 수많은 신학적 저작을 남겼다. 흥미롭게도 그가 머물던 곳 옆에는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기들을 기념하는 동굴교회(the Cave Church of the Innocents)도 남아 있다. 비록 진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제롬을 비롯한 탄생교회 수도사들은 예수님 탄생하던 그날 죄없이 죽은 아기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베들레헴 목자들의 들판교회
베들레헴 목자들의 들판교회

베들레헴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순례지이다. 교회가 처음 시작되던 시절부터 지금껏 순례자들은 끊임없이 예수탄생지와 그 아래 수도사들이 기도하던 동굴들, 그리고 목자들의 들판 등을 방문한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전하는 하늘 평화의 참된 의미를 온몸으로 새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올해도 신실한 순례자들은 어김없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베들레헴으로 순례 행진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순례하는 시간 그러니까 아기 예수가 탄생하던 그 시간만큼은 그 땅에 대립과 갈등은 멈추고 평안함이 임하게 될 것이다. 비록 그 행진에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역시 멀리서나마 아기 예수의 평안을 전하는 마음에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