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절에만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던 때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의 질문은 야간통행금지 해제를 즐기려는 청춘들에게는 애초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초저녁부터 쏟아져나온 젊음들은 자정을 넘기도록 도심을 메웠다. 교회들은 유년부에서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하나가되어 크리스마스 이브의 축제를 벌였다. 축제의 끝은 새벽송이었다. 아파트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동네의 집단민원은 전혀 염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 상점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밤낮없이 흘러넘쳤다. 성탄절만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12월 들어서면서 불기 시작한 크리스마스의 바람은 으레 송년의 제야까지 이어졌다. 이땅의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들은 이 나라가 언제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는 축제로서의 성탄은 도무지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이땅의 선교, 전도운동은 대형교회라는 목표에만 힘쏟을 뿐, 공동체로서의 교회에는 등을 돌리고 있어 그 소란이 오히려 그리움이 되고 있지는 않는가. 

▨… 초대 기독교 교회의 형성은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행태에서 드러났듯이 신앙인의 공동체적 삶이 그 목표였다. 유대인과 헬라인의 다름은,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되는 다름이었다. 이 신앙공동체의 결속이 교회의 대형화라는 자본주의적 목표로 부서지고 있다. 실제로 각자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답을 얻기가 불가능한 현실 아닌가. 

▨… 일본의 어느 대학생이 한센병자들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나환자촌을 방문했다. 이 대학생은 한센병자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평안을 발견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해야만 했다. 눈은 볼 수 없고 손가락은 문드러졌지만 그 한센병자는 점자성경을 혀로 읽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엄마의 젖을 빨 듯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미우라 아야코, 「빛 속에서」 참조)

▨… 시베리아 감옥에서 4년을 보낸 도스토예프스키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신약성서를 28회 독파했다(구약성서는 왜 읽지 않았을까)고 한다. 그렇더라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앙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혀로 성경을 읽는 한센인은 빛 속에서 오늘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영원한 현재(P. 틸리히)를 증언하므로 성탄을 축하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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