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작과 함께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우리 이웃들의 마음은 그보다 더욱 추운 듯하다. 고금리·고유가·고물가로 인해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북한의 안보 위협은 점점 더 고조되며, 노동계의 파업이 잇따르는 등 사회 갈등은 심화되고, 이태원 참사 등 각종 재난과 사건사고로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들은 여전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이 와중에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은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국익과 민생을 위한 사안에서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사사건건 대립하며 오히려 국가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지치고 상한 국민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백문일답, 백 번 물어도 답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시다. 가장 존귀하신 분으로서 가장 낮고 천한 자리로 임하신,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땅의 유일한 희망이요 살길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요, 빚진 자들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기독교인들은 그저 세상이 만든 성탄 문화에 휩쓸려 흘러갈 것이 아니라, 예수 나심의 의미를 강하게 붙들고 전해야 한다.

또한 그 사랑을 전하는 것이 단순히 말로만이어선 안 된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 사랑을 보여야 한다. 성경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요한1서 3:16~17)라고 강조한다.

물론 교회들의 사정도 녹록하지만은 않다. 이 경제 위기는 그대로 교회들에게도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다른 이들을 보살피고 배려할 여유를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고, 몇 년 동안의 코로나19 사태로 재정적 타격도 컸다. 이 상황에서 섬김과 나눔에 초점을 맞추긴 어렵다. 실제 많은 교회들이 봉사와 복지 비용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성탄의 정신을 드러내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다(고후 8:2).

기독교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께서 그러하셨듯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을 맞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의미를 더 깊이 묵상하고, 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인 동시에, 주님을 향한 예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베푸는 작은 도움과 섬김이,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성탄의 정신이다.

잘못된 성탄 문화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는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가고, ‘산타’로 상징되는 세속의 문화들이 이를 점령해가고 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의미가 무엇인지, 기독교인들이 먼저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실천하고, 제대로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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