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이 제거된 사울은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즉시로’ 유대인들의 각 회당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사울이 전도를 하자 듣는 사람이 다 놀라하며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자를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어가려고 함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자 이번에는 유대인들이 변절자 사울을 죽이고자 공모를 하게 되었다. 사울은 이것을 알게 되었고, 사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려 그로 피하게 했다. 

다메섹 성을 탈출한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갔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귀고자 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사울의 제자 됨을 믿지 못하고 사울과의 접촉을 다 두려워했다. 이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에 대한 보증을 서주었다. 

사울은 바나바 덕분에 제자들과 교제하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출입하며 예수를 증거 했다. 사울이 특히 자신처럼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변론했다.  

이렇게 사울 하나가 변화가 되자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갔다. 그리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

본문이 주는 영적인 교훈들이 있다. 첫째로 바울이 예수 믿는 시점이 교제와 전도하는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는 자신에게 힘을 가져다주었다.

‘힘을 더 얻어’라는 단어는 ‘엔 뒤나모오’로 강하게 하다는 뜻이다. 로마서 4장 20절은 ‘견고’, 에베소서 6장 10절은 ‘강건’으로 번역했다. 전도가 이런 결과를 주는 이유는 웨슬레에 의하면 선포한대로 믿음이 같이 가기 때문이고, 성령이 역사하는 토양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다메섹에서의 살해위협으로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왔고 제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했다.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한 장본인이었다. 화해가 필요했다. 맺힌 것은 풀어야 한다.

교회의 인정도 받아야 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교회의 인정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사울은 거부를 당했다. 이는 사람들이 사울의 변화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요한다. 사울은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고 기다렸다. 이런 사울을 예루살렘교회에 소개하고 적대감을 해소시켜 준 사람이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레위 가문, 제사장 가문이었다. 제사장을 라틴어로 ‘pontifex’라고 부르는데 ‘bridge builder’라는 뜻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이기에 모두 ‘하나님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사울의 변화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만들었다. 나의 변화도 그래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수가 더 많아져 갔다. 경외와 성령의 위로는 같이 간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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