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슬픔에 관하여

필자의 지난 칼럼 ‘리더의 행복할 자유와 지혜’를 읽은 한 후배가 연락을 했는데요. 목회자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는다는 말을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짐작건대 리더의 행복할 자유를 침해하는 비본질적인 요구에 힘이 드는 모양이라 마음이 시렸습니다.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가 만든 작품 중 역대 최고 수익을 낸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인데요. 시대적 명작이나 대표작은 작가나 감독의 역사적 체험이나 직접 경험이 모티브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2010년 피트 닥터(Pete Docter)는 사춘기 소녀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주역으로 몇 가지 감정을 놓고 고심한 끝에 ‘소심이(Fear)’를 ‘기쁨이(Joy)’와 함께 중심 캐릭터로 정했어요. 

초기 시놉시스는 기쁨이가 소심이에게 큰 교훈을 얻는 것이었죠. 하지만 소심이를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 가기엔 매력도 영향력도 부족했습니다. 영화 작업은 3년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었죠. 감독은 <몬스터 주식회사>라는 대작을 낸 후라 차기작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져 슬럼프에 빠집니다.

자신의 한계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 슬픔과 절망이 덮쳐왔어요. 슬픔이 커질수록 그동안 함께한 동료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감정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슬픔이를 주인공으로 대본을 다시 썼고 그렇게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탄생합니다.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을 도울 때와 상을 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똑같은 뇌 영역이 자극된다고 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연민과 공감의 감정이 깊은 사람이고요. 공감력이 높은 사람은 슬픈 음악을 즐기는 경향이 비교적 높다고 합니다. 왜 슬픈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걸까요?

수전 케인(Susan Cain)은 “나는 평생 슬픈 음악에 강한 반응을 보였다. 슬픈 음악은 우리를 잠시 슬프게 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고 일어설 힘을 선물한다. 슬픈 음악을 들으며 나의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자의 것임을 깨달으며 회복이 시작된다”라고 했습니다. 

음악 재생 목록에서 기쁜 노래가 약 175번 반복될 때 슬픈 노래는 800번 정도 듣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행복한 노래는 듣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줍니다. 슬픈 노래는 ‘연결된 느낌’과 ‘충만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에드 디너(Ed Diener)는 미국과 세계 곳곳의 최상류층에서 극빈층까지 다양한 표본 사례연구의 결과를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으로 출간했는데요. “83퍼센트만 행복하라”라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를 컴퓨터로 분석했더니 기쁨, 만족 같은 감정이 83% 정도였습니다.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부정적 감정은 17%였어요. 모나리자의 미소는 활짝 웃는 것도 찌푸린 것도 아닌데요. 그녀의 미소는 83%의 기쁨과 17%의 슬픔이 조화를 이뤘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기쁨이 천박하지 않고 슬픔이 어둡지 않아서입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행복-그 심리적 부의 비밀을 드러내다』인데요. 슬픔과 두려움을 17% 가진 사람이 삶의 여러 영역에서 잘 지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10의 수준을 정하고 행복 설문을 작성하게 했을 때 약 8점의 행복 점수를 받은 사람이 20년 뒤 가장 많이 성취했는데요. 8점을 받은 이들이 경제 수입, 교육 수준도 높았지만 9, 10점의 표본보다 성취도가 높은 이유를 8점 자들은 행복이 주는 창의성과 활력에서 이익을 얻으면서도 약간의 걱정과 위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지속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연구자는 행복을 ‘주관적인 안녕감’이라고 정의하는데요. 행복이란 개인이 처한 객관적 상황보다 주관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여기는가의 문제로 봅니다. 주관적 안녕감에는 직장, 건강, 관계 등 삶의 중요 영역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평가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담겼습니다. 

리더의 고독과 슬픔은 숙명입니다. 슬픔을 겪은 리더는 슬픔 당한 구성원과 공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켜 준 것은 주님의 죽음입니다. 

슬픔이 죽음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리더의 우울감은 피할 수 없지만 최상의 아름다운 미소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습니다.

오늘의 눈물을 부끄럽게도 불편하게도 여기지 않는 당신이 ‘영적인 부자’입니다. 이 또한 과정의 하나로 지나갑니다. 당신의 미소가 영원히 완벽에는 이르지 못한다한들 17%의 슬픔과 함께 주님의 아름다움을 완성할 수는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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