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 대제는 7가지 죄악으로 ‘교만, 질투, 분노, 탐심, 탐식, 게으름, 정욕’을 지목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들 중에서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라고 표현했다. 교만 이외의 다른 모든 죄악들은 교만 때문에 파생된다는 의미였다. 

불행을 일으키는 마음의 중심에 교만이 자리 잡고 있다. 교만은 마음의 문제이면서 또한 영적인 문제이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함으로써 교만을 드러내었다. 교만은 죄의 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죄의 본질이다. 

본문 5~10절은 다윗의 아들 중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에 관한 내용이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장남 암논은 여동생을 성폭행했다가 압살롬에게 칼 맞아 죽었고, 둘째 길르압은 병들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셋째 압살롬은 반역하다가 죽었다.

결국 아도니야가 왕권 계승 서열 1순위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왕권도 잃고, 목숨도 잃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본문은 아도니야가 실패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로. 5절에 보면 아도니야는 ‘스스로를 높였다’고 했다. 자기를 높이는 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왕상 3장 7절에 보면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종은 작은 아이’라고 고백했다.

그러기에 자기가 왕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았다(대하 1:8). 반면 아도니야는 자기가 당연히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혜인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교만이다. 

둘째로. 아도니야는 기다릴 줄 몰랐다. 준비하면서 가만히 기다렸으면 아마도 왕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반역이라는 누명을 쓰고 권좌를 내 놓아야 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고, 하나님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셋째로. 아도니야는 잘 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6절). 그는 ‘체용이 준수한’ 그런 사람이었고 이는 외모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모름지기 잘난 사람은 꼴값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잘난 것 만큼 하나님을 의지할 여지가 좁아진다. 오히려 결점이 축복인 경우가 많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약했기에 하나님이 강함 되셨다고 고백했다. 넷째로. 가정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6절에 보면 다윗은 한 번도 아도니야에게 책망의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다윗은 가정을 너무 많이 비웠고, 자신도 도덕성에 문제가 많아서 자식을 책망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아도니야로 하여금 자기 한계를 모르는 인간이 되도록 만들고 말았다. 책망을 들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망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아도니야는 사람들과 모의를 했다. 당연히 왕이 될 줄 알고 왕으로 즉위하기 위한 의식을 위해 사람들과 논의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군대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이었다. 왕이 되는 것은 사람들과 모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였다(신17:15). 아도니야는 이 말씀을 망각하고 있었다.

아도니야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누구나 아도니야가 될 가능성이 있다. 누구나 교만의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만하면 망하게 되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우리는 아도니야 같은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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