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히 오래전 일이지만 서울신학 기숙사에서는 신문정기 구독이 드러낼 일이 못되는 때가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영화를 관람해도 신학생의 본분을 망각했다고 비난받을까 조심스럽기도 했었다. 그 영향일까, 노년의 목사들은 은퇴가 언제인지 세는 것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연세인데도 영화 이야기라면 입에 올리기를 머뭇거리신다.

▨…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 또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지루할 것만 같은, 단편 기록영화 같은 한국어 영화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다. 아카데미 영화상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세상 일에 너무 미혹 당하지 말라는 가르침 때문일까. 영화의 재미보다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장면이 있어 목회자들의 견해가 궁금해졌다.

▨… 제이콥은 ‘자신의 미래’라는 꿈을 위해 아칸소의 허허벌판에 농장을 세우려고 10년이나 병아리 감별사로 일해 번 돈을 모두 쏟아 붓는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검토나 아내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배려는 배제해버린 행위가 무모한 것 아니냐는 질문은 애써 외면해버린 채로… 어쩌면, 이런 제이콥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소명의식에 아내와 자식들의 삶까지 함께 묶어버리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의 결의를 닮아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제발 저린 도둑이 영화를 사시안으로 본 것일까.

▨… 농장으로 성공할 가망도 없는 제이콥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이상하게만 보이는 폴(Paul, 바울)이라는 이름의 일꾼 한 사람뿐이다. 그는 주일이면 교회에 가는 대신,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메고 혼자 하염없이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체험하고 교통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꾸짖어야 하는가. 오늘의 목회자 가운데 폴과 같은 ‘가나안 교인’이 염려되지 않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 폴이 과연 기독교인일까를 자문하는 사이에 화면이 바뀌며 토네이도가 제이콥의 농장을 날려버렸다. 그 토네이도는 제이콥의 삶에서 자신의 목회와 삶을 보는 모든 목회자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작가 존 케리가 말했다. “역사의 가장 유용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오늘 우리가 보기에 틀렸거나 불명예스러운 목표를 과거 세대들이 얼마나 열심히, 정직하고 고통스럽게 추구했는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마거릿 맥밀란, 『역사사용설명서』) 목회 선배들의 진실성 앞에서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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