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봉직한 어느 성결인이 나이 여든이 넘었음에도 간암으로 세 번째 수술을 받았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 외출을 자제할 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방문도 사절할 수밖에 없었던 삶이었음에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있음을 성경 필사로 확인시켜 주었다. 또박또박 박아 쓴 글씨는 자신의 신앙의 지성적 분위기와 단정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는 말씀을 영어와 한글로 병기해서 쓰고 그것을 카메라로 찍어 보내주는 마음이라니… 노트에 기록된 부분으로 보아 성경 말씀 전체를 필사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씀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려는 의지만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믿음을 우리 주님께서 외면하실까? 아니다. 절대로 외면하실 리 없으실 것이다.

▨… 그렇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P. Tournier)는 그에게 진찰을 요청하는 노이로제 환자나 우울증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 주듯이 아침, 점심, 저녁에 두 번씩 ‘시편 23편’을 또박또박, 찬찬히 읽도록 하라고 약 처방전에 빠뜨리지 않고 써주었다. “한 구절, 한 구절 말씀을 음미하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최대한 마음에 새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못 박으면서… 그렇다고 투르니에가 약 처방을 도외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투르니에의 신앙은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묻는다. “많은 병자를 치료하고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살리신 예수는 자신을 방어함 없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힘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그가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의 약함과 인간적 패배에서 그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에서 보다 더 높은 정신력(아버지를 향한 믿음)의 체현을 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P. 투르니에,『강자와 약자』)

▨… 우리 시대를 이끌었던 많은 성결인들이, 목사님들뿐만 아니라 많은 평신도들이 더 살아계셨으면 보다 큰일을 하실 수도 있었으리라고 믿어지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신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 부르심을 받는다’는 객쩍은 소리까지 회자되겠는가. 비록 법이 족쇄가 되어 은퇴는 했더라도, 육신은 노년이라 병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의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자문해보자. 노년이, 못 고치는 질병이 신앙까지 삼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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