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준엄하심과 인자하심
죄의 결과는 진노이자 영원한 형벌이지만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인자와 사랑이다

우리가 복음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복음의 내용을 듣는 사람들의 거부감이 없이 잘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을 잘 표현하기 위하여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복음의 균형을 잃게 된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22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함을 보라”고 말한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인자하심만이 아니라, 준엄하심을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경고를 무시하곤 한다.

하나님의 준엄하심은 하나님의 인자하심만큼 따스하고 달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준엄하심에 대한(죄나 지옥과 같은 주제에 대한) 기피는 잘못된 행위이다.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설명하기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무시하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자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위험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세례요한은 마태복음 3장 11~12절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선포하였다.

죄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과 원수됨과 심판이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수되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화해를 요구하거나 취할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시고 아들을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화해를 확증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이야기할 때 죄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이해 없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빛을 잃게 되며 복음도 빛을 바래게 된다.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자신을 둠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원적인 죄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흔히 우리가 회개한다고 할 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난 모든 행위를 고백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것은 성령께서 조명하실 때 드러나는 개인적인 죄의 가지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도록 만든 근원적인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즉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올려놓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신이 주인 된 죄가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은 죄인인 것을 인정하십니까?”라고 질문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네,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답을 들으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여기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범하는 과실들은 근원적인 죄 때문에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원된 것이 바로 설명되어 관계가 정립되지 못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근원적인 죄는 ‘Sin’이라고 부르고, 가지로 파생된 죄는 ‘sins’라고 부른다. 죄와 죄악들이다. 죄가 하나님을 상대로 지은 것인데 그 죄는 제대로 소개하고 설명하지도 않은 채, 동료들을 상대로 지은 죄악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다.

복음의 메시지에서 죄의 설명은 당연히 근본 뿌리인 하나님을 상대로 지은 죄, 곧 사탄이 지은 것과 동일한 죄를 지은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사랑으로 우리에 다가오시고 기다리시며 설득하여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신다는 점이다.

죄인을 그 죄에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사랑이다. 사랑받고 살아가도록 지어진 바 된 인간이기에 죄로 인해 그 사랑을 채우지 못하여 사랑에 배고픔을 느끼는 인간에게 아버지의 사랑은 다시금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영원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닌가?

전도서 3장 11절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한다. 우리 영혼은 가장 깊은 곳에 타락 이전의 삶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영혼은 분명히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신음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복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하심과, 그 죄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균형이 바로 잡혀야 한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고 영원한 형벌이지만, 그 형벌에서 회복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인자하심과 사랑이다. 이것을 혼돈해서는 안된다. 사랑으로 섬기면서도, 접촉점을 삼으면서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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