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사람이 살면서 감당해야 하는 일을 생업(job), 직업(career), 소명(calling)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목회자의 삶에는 슈워츠의 소명으로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고 질문을 제기한 것이 한국성결신문 제1325호(2022년 7월 20일자) 애오개의 내용이었다. 목회를 전문직업으로 이해하는 신학자들도 있지만 성결인 목회자들이 받은 소명의 성격은 직업의 소명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애오개 나름의 고집이었다.

▨… 그 글에서, 이미 박사학위를 수득한 분들이 목회를 향한 소명의식으로 신학생이 되었다는 서울신학대학교 총장의 자랑(?)에 은퇴한 노(老) 목사님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보냈다는 내용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는지 애오개를 아끼시는 어느 노(老) 장로님께서 항의(?)의 전화를 주셨다. 학위수득자의 신학에의 길 등정은 서울신학대학 뿐만 아니라 교단 전체의 기쁨이요, 자랑인데 굳이 고학력과 소명이 정비례인지, 역비례인지 따위를 물으며 기뻐만 해도 되느냐고 송곳을 들이대는 의도는 무엇이냐고.

▨… 애오개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사과를 드리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분명하고 정확한 의도를 밝혀야 하는데 글의 내용이 때로 얽히고 설켜 복선이 깔릴 때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학력과 소명은 그런 복선의 소지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개인의 신앙적 결단의 문제이고 성결인들은 모두 박수로 환영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 비신앙인이라면, 목회에의 길을 부와 명예에 연관짓는 복선을 깔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되기를 결단하여 신학에의 길에 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그분의 부르심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던지게 하는 힘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지식, 능력, 깨달음으로는 그분을, 그분의 십자가를 증거할 수 없다. 이것은 성결인의 신앙이다. 그 부르심이 소명자를 십자가의 길에 세울 때 신학에의 소명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십자가에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 깨달은 것이라야 기껏 자기 능력의 한계라는 자기모순에 갇히면서도 좁은 길을 택해 가겠노라고 순종하는 사람들, 닭울기 전에 세 번 그분을 부인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람의 회개에 공감하는 이들도 우리에겐 신학생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저들의 삶의 기반이고 내용이며 목적임”(P. 틸리히)을 확인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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