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곳에 그대로 계시옵소서. 그리고 저희는 이 땅 위에 이대로 있겠습니다. 이곳은 때로 이렇듯 아름다우니 뉴욕의 신비와 파리의 신비가 있고 그것들은 실로 삼위일체의 신비와도 견줄 만합니다. 우르크의 작은 운하와 중국의 만리장성과 모를레의 강과 깡브레의 박하사탕이 있는가 하면 태평양과 뛸르리 공원의 두 줄기 분수도 있고 착한 어린이와 못된 신하도 있고 이 세상의 온갖 기적들이 있습니다.”(하략, 자크 프레베르의 주기도문)

▨… “뜨와 뛰메메 에제떼메 뜨와 끼메메 에뫄끼떼메, 그대 날 사랑했고, 난 그대를 사랑했네. 날 사랑했던 그대, 그대를 사랑했던 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프랑스 샹송 고엽에 빠져들었다. 불어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땅의 젊은이들도 이브 몽탕이나 에디트 피아프를 따라 ‘뜨와 뛰메메’를 찾았다. 이 고엽의 작사자 자크 프레베르가 “부르주아 계급과 신(神)과 학교와 기성세대를 조롱하는”(정끝별) 시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 그 시대의 젊은 팜므 파탈, 프랑수아즈 사강도 프레베르의 주기도문을 흥얼거리며 자신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보다 더 소설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르트르를 따라 “우리에겐 자유롭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서 프레베르의 주기도문을 흥얼대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든 형태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밑바닥에서부터 삶을 증오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마음의 파수꾼)라고….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우리 성결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참으로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이들에 대해 죄인임을 고백해왔었다. 아무리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인간의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주장해도 인간의 야만성과 죄성을 고발하는 증거는 끝이 없음을 제2차세계대전이 드러내보여주었음을 확인 했기에.

▨…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젊은 세대의 좌절과 방황이 프레베르의 주기도문 속에 녹아 있음을 당시의 가톨릭은 간과한 것일까. 에디트 피아프가 1963년 사망했을 때 가톨릭은 그의 삶이 신자답지 못했다고 미사를 거부했다. 피아프 자신은 수막염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데 테레사 성녀께서 자신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음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었음에도. 오늘 이 땅의 젊은이들도 핵전쟁과 코로나 팬데믹의 위협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프레베르의 주기도문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교단의 대응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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