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결신문에서 보내준 23편의 목회 수기를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목회자들의 눈물과 정성이 어린 진실한 기록 어느 한 편도 섣불리 대할 수 없었다. 

행간에 녹아 흐르는 고단한 목회의 땀방울을 이해하고, 필자의 마음 속으로 이입해가는 동안 이 독서 체험이 내 약한 신앙에 내리는 단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수기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방이 막혀가는 가운데, 작아도 너무 작은 교회에서 나이 든 어른들을 섬기며, 혹은 다음 세대를 키우며, 이주민을 선교하며, 땅끝까지 걸어가서 목회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에랴!

예를 들면 이렇다. 알맞게 준비했음에도 교우들에게 나눠주고 보면 항상 떡이 부족해 애를 태우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 떡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니라 섬김의 마음이 부족했다는 깨달음(초촌중앙교회 김유훈 목사), 교회를 기피하는 농어촌 노인들의 마음이 기실 교회에 대해 알고 싶지만, 집안의 여러 내력으로 인해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늘푸른교회 배재원 목사), 중증장애를 갖고 있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독거노인을 찾아가 이발도 해드리고 휠체어를 밀고 가서 약을 받아오는 날의 뿌듯함(우리들교회 최명직 목사), 어렵게 전도한 아이들이 더 큰 교회로 옮겨가고 나서 교회의 빈 좌석을 보면서 로컬처치의 영역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사명감의 확인(강동수정교회 안효창 목사), 7년째 한 주도 빠짐없이 밥차 사역을 하면서 나눔과 섬김의 사역은 성실함으로 해야 한다는 깨달음(힘찬교회 윤지현 사모),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기에 그런 부담감을 더 큰 거룩함으로 받아들이는 마음(하이교회 이세훈 목사)….

여기 다 소개하지 못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돈이나 물질, 교회의 크기나 어떤 프로그래밍 상의 측정 수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특별히 부여해주신 사명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거룩함의 능력,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헌신의 뜨거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회 수기를 읽으며 오래전에 읽었던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비치의 소설 『등대지기』가 떠올랐다. 폴란드는 18세기 말 외세의 침입을 받아 150여 년간 나라를 잃은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령 파나마운하 무인고도의 한 등대. 여러 전장을 떠돌던 노인이 등대지기 일자리를 얻어 고정된 삶을 살게 된다. 

그가 등대를 떠나는 일은 주일날 예배당에 갔다가 신문을 사올 때 뿐이다. 찾아올 사람도 없다. 보급선이 한 달에 두어번 식량을 실어다 준다.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며 여위어가는 노인에게 어느 날 우편물이 온다. 등대지기로 취업했을 당시 뉴욕에 폴란드협회가 설립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봉급을 떼어 보낸 적이 있었는데, 협회에서 감사의 표시로 모국어 시집을 보내온 것이다. 

오래도록 잊어버렸던 모국어를 읽는 동안 노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움과 서러움 속에 흐느끼던 노인은 황홀에 잠겨 모래톱에 쓰러져 까무룩히 잠이 든다. 

목회 수기를 읽으면서 밀려온 감정의 파도는 등대지기 노인이 밀려오는 파도와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과 유사한 감격스러움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모국어의 그리움처럼 신앙에도 그런 원초적인 그리움이 내재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변화가 심하고 팬데믹으로 인한 차단의 어려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자신을 비우고 접근하며 소통하는 목회자의 진실은 어떤 것도 막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고통스럽다고, 너무 힘들다고 소리칠 때 그 메아리는 멀리 퍼져나가기 어렵다. 그 고통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모습, 어떤 어려움이든 기꺼이 받아들여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자세, 이런 것이 새로운 시대의 목회자 상이 아닐까 한다. 

이제 곧 수기집이 책자로 발간돼 나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기를 읽고 신앙의 저 높은 고지를 우러러 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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