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세례예전 속에 들어있는 성결

세례의 성례전적 차원 재인식하고 성서와 초대교회 정신과 실천 따라 시행해야 성결은 성령세례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근대 개신교에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세례 성찬 등 공적인 성례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회개, 기도, 말씀 등 개인적 경건을 통해서 받는 것으로 인식된다.

예컨대 교회에서 베푸는 공적인 ‘물세례’보다는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들을 때 ‘성령세례’를 받게 되며, 이것이 실질적인 구원의 은총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성령세례를 물세례와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물세례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단계로 보았다.

성서와 초기 기독교의 세례예전을 조사해보면 세례를 받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수세자는 이미 성령을 받고 성결을 경험하는 경지에 이르게 됨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 그리스도교로 입교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였다. 그것은 ‘회개’와 ‘물세례’와 ‘성령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령’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나머지 두 개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입교의 내용 또는 실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물세례와 성령받음의 관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물세례와 성령받음이 한 자리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유형이며(행 2:38, 19:5-6), 둘째는 역시 물세례와 성령받음이 한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순서가 뒤바뀌어 먼저 성령을 받고 즉시 물세례를 받는 유형이며(행 10:44-48), 셋째는 물세례와 성령받음이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유형이다(행 8장).

이 세 가지 유형 공히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성령받음은 물세례처럼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물세례와 성령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리 물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은 빌립의 설교를 듣고, 믿었으며, 물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다. 다시 말해서 ‘물세례’라는 형식은 갖추었으나, ‘성령’이라는 실재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들어올 수 없었다.

사마리아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4세기 교부 암브로스(Ambros of Milan)는 ‘성례전에 관하여’(On the Sacrament)라는 글에서 세례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사건 즉 성결의 사건임을 주장하였다.

4세기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톰 역시 세례후보자들에게 준 자신의 ‘세례설교’(Baptismal Homily)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례후보자들이 신성한 물에서 올라올 때 그들은 주님의 몸과 피를 맛보며 성령께서 거주하시는 전이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옷입게 되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지상의 천사와도 같이 희고 태양의 광선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즉 초대교회는 물세례라는 입교의식을 통하여 한 사람의 자연인을 교회공동체로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외형뿐인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켜 옛사람을 죽이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결한 새사람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현대교회가 세례를 그저 하나의 요식적인 행위로 치부하지 말고 세례의 성례전적 차원을 재인식하고 성서와 초대교회의 정신과 실천을 따라 지금보다 더 비중있게 신학적 의미를 되살려 시행한다면 분명 세례의 과정에서 수세자는 성결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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