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 시간』
병원서 알려 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죽음을 배우는 시간』의 저자 김현아는 실력과 감성을 두루 갖춘 의사다. 서울대학교를 마치고, 현재 평촌 한림대학교 병원 류머티즘 내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부부가 의사이며, 무신론자이지만 보통 의사의 기준보다 높은 인문학적 식견을 갖추었다.

죽음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둔갑하여 죽음의 모든 과정을 병원이 떠맡은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다.

빅4 병원 중환자실에서 갖가지 의료 장비를 장착한 채 죽는 것이 최고의 죽음으로 자리 잡은 현실, 그 이면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의료보험 체계의 공모를 드러낸다. 그로 인한 의료 자원 낭비와 죽음을 대면할 기회 상실을 안타까워한다.

의료제도와 의학 관련 산업들이 함께 이루는 불합리한 현실을 실감하는 책이다. 오래전에 본 책, 『인턴 X』의 한국판 같다.

1장, 죽음의 장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의사 
그로테스크한 진료 현장을 소개한다.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 의료인의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낸다. 병원을 환자의 입장 아닌 의사의 입장에서 조망할 기회다.

죽음과의 조우를 피해 혈액종양내과에서 류머티즘 내과로 전과했지만 자가면역 체계 붕괴 환자들의 죽음을 여전히 대면한다. 의학적 현실이 아니라 죽음에 이른 환자들을 통해 겨우 죽음을 배워간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사, 보호자, 우리 사회 전통의 암묵적 동의하에 중요한 의료 자원인 중환자실은 죽음의 대기실로 전락해 소비되고 있다. 죽음과 노화를 병원에 떠넘겨 치료 대상으로 돈과 의료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의사들은 그 주변을 설득하여 그 소모적 의료 행위를 ‘놓아야 할 때’를 설정할 책임이 있다. 죽음은 의학적 측면을 넘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인문학적 성찰도 학습한다. 

2장, 백세 시대 

왜 우리는 이렇게 죽게 되었을까 
장수는 의료 발전 이전에 생활환경, 섭생 등이 발전한 근대화의 산물이다. 몸이 예상된 기간 이상을 견디는 동안 질병은 필연적이다.

전쟁, 사고 등의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방법이 그런 만성 환자들에게도 무차별 사용됨으로 과다한 의료비, 의료 자원 낭비를 초래하며 잉여 생명의 연장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에게 취약한 ‘웰다잉’을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가족에게 분리되어 병실에서 죽어가는 질 낮은 죽음이 일상화되었다. ‘노환 사망’은 의료 실패가 아니라 자연적인 과정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의료계가 선도해야 한다. 병원은 죽을 곳이 못 된다.

노화에서 죽음으로
무병장수는 헛된 꿈이다. 죽음은 늘 내 곁에 있다. 사고사가 아닌 대부분은 병약, 노화의 과정을 겪어 죽음에 이른다. 시력, 청력, 관절의 약화, 보행 이상, 식욕부진, 만성 통증 등 이런 신체 현상과 고립으로 비롯되는 우울감이 노화의 필수 과정이다. 의료체계가 발달 된 만큼 그 의미 없는(?) 고난의 기간이 연장된다.

진통제가 가까이 있다. 지나친 절제와 중독에 이를 만큼 남용이 공존한다. 비급여 치료는 공인되지 못한 것들이니 낭비일 수 있다. 진통제, 안정제의 중복 처방으로 대부분의 노화는 약물로 중독된다. 제약사들의 공격적 마케팅도 그 일을 돕는다.

임종에 나타나는 공통 징후들이 있지만 딱히 죽음의 시간을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에 임박한 사람은 병원으로 옮기는 순간 각종 검사들과 의미 없는 연명치료의 굴레를 뒤집어쓴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도 인위적 제거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최상의 선택은 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더 나은 선택은 스님들처럼 곡기를 끊는 방법일 수 있다.

생로병사의 이유를 찾지 마세요
질병의 인과관계는 잘 밝혀지지 않는다. 현대의학은 강제로 밝히려 한다. 특히 암도 치매, 관절염처럼 단순히 노화의 결과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어이 조기 진단 발견을 위해 더 많은 암 발병 위험을 감수한다.

흔한 갑상샘암 등 몇몇은 진단보다 방치가 낫다. 그러나 병원도 의사도 경제 주체다. 기계로 검사를 해야 의료보험을 통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통증과 질병의 원인에서 나이 말고 확실한 건 거의 없다.

3장, 죽음 비즈니스

왜 의사들은 죽음 앞에서 거짓말을 할까?
환자, 혹은 가족들의 죽음을 치료 대상으로 여기는 필요를 단정적으로 거절할 수 없어서 의사는 정확한 환자 상태에 접근하지 않는다. 병사는 단지 죽음의 마지막 단계의 이름일 뿐 죽음은 당연한 과정인 것을 받아들여야 해결될 문제다.

연명의료 결정서 사용설명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의료진들의 딜레마와 환자 일당의 필요가 맞물려 생사 모호한 인명들이 중요한 의료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2016년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와 가족의 끊임없는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 서비스 요구와 의료 분쟁 회피를 위한 의료진이 합작해서 여전히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준비로 건강할 때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경감하는 치료, 즉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연명의료 계획서’를 세밀하게 작성해 두라. 

중환자실에서 생기는 일 
부친의 중환자실 실상을 중계한다. 중환자실 입원은 자신의 배설물, 포박, 간병인의 학대를 견디는 과정이다. 싫으면 집에 있어야 한다. 의료진은 정상적 퇴행인 노화를 감당할 수 없다.

한국의 2003~2014 중환자 생존율은 식물인간 포함 64~66%다. 대부분 노화나 말기 환자들이 차지하여 실제로 긴급한 중환자는 기회를 잃는다. 신중한 입원 결정은 병원 몫이다. 그러나 의료가 판매 상품이 되고 파편화된 의료 시스템에서는 요원한 문제다.

중환자실 입원에 따른 인공호흡기 부착은 자가 호흡을 마비시키기 위한 진정제 투입이 선행함으로 의식이 소멸한다. 에크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료 장비는 생명의 질을 떨어뜨리고 고비용, 재감염 위험이 있다. 한마디로 생지옥이다. 의미 있는 생명 연장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심폐소생술은 익혀 두자. 급한 상황에서는 생명을 구할 기회가 된다. 입원 중인 중환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Do Not Resuscitate(DNR) 요청서가 살인 병기로 둔갑 될 우려가 있지만 그마저 요청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을 산 것처럼 여겨야 하는 의료 영업의 희생물이 된다.

법률 서커스

생사 결정은 가족과 의료진 중 누가 우선적인가. 선진사회는 이 간극에 국가의 개입 여지가 넓다. 생명을 주관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의료적 판단, 법률적 판단, 가족의 동의, 경제적 문제 등이 복잡하다. 특히 평소 무심했던 가족들의 이의제기가 문제다. 나라마다 생명을 보호하는 법은 있지만 그 생명의 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없다.

그 결과, 죽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유보적 상태, 심폐 정지 등 상식 밖의 용어가 생성되었다. 병원의 적극적 치료라는 가장 잔혹한 방법만 살인, 혹은 살인 방조라는 혐의를 벗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종종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쇼피알. 보여주는 행사로 행하기도 한다.

중환자실 입원과 치료 과정을 소상히 소개한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이지만 통증은 어쩌나.

4장, 좋은 죽음, 바람직한 죽음

누가 불멸을 약속하였는가
길가메시 프로젝트, 므두셀라 재단, 진시황 등 동서고금, 죽음을 면할 길은 끊임없이 추구했지만 답은 없다. 억만장자들이 꿈꾸는 불법적 프로젝트, 냉동인간, 클로닝으로 내 클론을 만들어 가는 법은 말(馬)의 경우 가능했다. 사람은 어떨지 미지수다.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죽고 마는 순환 없는 인류사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죽음은 순리다.

어떤 죽음
90세에 암 진단받고, 나머지 1년을 가족 여행으로 보낸 경우, 생명의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좋은 죽음이다. 104세에 택한 안락사도 나쁘지 않다. 법정 스님, 자기 의지와 달리 항암치료를 받고 고생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초탈, 소박한 장례식 유언 등은 좋은 죽음의 일단이다.

좋은 죽음의 몇 가지 조건들은 다 공감하는 내용이다. 더 좋은 죽음은 잘 삶에서 비롯되어 준비된 죽음이기를 주장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고 생명의 존엄함을 보장 받으면 좋은 죽음이다. 재산과 인간관계 정리도 필수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자.

집에서 죽고 싶어요
죽음의 초청장은 보행 실조로 시작된다. 장소를 결정할 수 있다면 집에서 죽는 걸 선호한다. 돌봄 인력, 경제력 등 여러 제약이 따른다. 차선으로 요양 시설인데 절차가 복잡하다.

그 절차와 비용을 안내해 준다. 아울러 집에서 요양 제도를 이용해서 잘 죽는 법도 소개한다. 죽음이 임박한 예후를 의사의 소견으로 밝혀두었다. 목회자에게 도움 된다. 현대인은 자의든 타의든 요양시설, 병원 등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다.

냉정하게 받아들이자. 저자는 자신의 ‘엔딩 노트’를 첨부한다. 의학적 견해로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하는 게 마음에 닿는다.


생로병사 회피용으로 만들어진 불교나 기타 종교의 실용성을 배운다. 내게도 가까워지는 죽음에 대한 친근함을 배운다. 인간으로 나의 생명 관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다행히 내 신앙은 내게 미리 죽음 건너편의 비밀을 고지한 터여서 주변과의 이별에 대한 서글픔, 죽음과 만나는 접점이 극심한 통증만 아니라면 많이 두려워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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