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키호테는 순수성과 의지를 상실하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방황하는 고통 속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우리 동네의 희화화된 그리스도이다. 과거의 사상적 빈곤, 현재의 천박함 그리고 미래의 신랄한 적대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때마다 그들 사이로 돈키호테가 강림한다.”(오르테가 이 가세트;『돈키호테 성찰』)

▨… 사람에 따라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프리드리히 니체 이후 최고의 지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 스페인 사람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돈키호테를 칭송하는 사람들의 반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이 들으면, 결코 마음이 편안할 수 없는 한 마디를 던졌다. “돈키호테는 신성하고 고독한 그리스도의 슬픈 패러디다.”(이수은,『평균의 마음』 참조)

▨… 1800년대의 러시아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예수의 모습으로 상상이 안되는 사람 ‘백치’를 그려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하면, 당시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예수는 백치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생의 조건으로서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아름다운 사람이기 위해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득 찬 탐욕의 숨결을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백치여야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백치일 수밖에 없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해는 한국교회 특히 우리 교단에서는 그다지 공감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양떼라든가 풍차에게 달려들다가 고꾸라지는 괴짜무사인 돈키호테를 “신성하고 고독한 그리스도의 슬픈 패러디”로 이해하라면 무슨 망발이냐는 항의가 장마철에 비오듯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스페인 사람들 사이로 돈키호테가 강림한다고까지 표현하는 이유가 행여라도 있지 않을까를….

▨… 돈키호테의 꿈은 일반적 가치 판단의 기준에서 보면 백보를 양보해도 꿈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말도 안되는 꿈을 위해서 돈키호테는 자신의 전부를 던진다. 그것은 어쩌면 ‘백치’의 꿈을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부활’(제4회 작은교회 목회수기 공모작)을 비롯한 모든 수기응모작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와 투지를 활화산처럼 내뿜고 있었다. 개척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치처럼,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예수그리스도를 패러디함으로써 심사위원들을 부끄럽게 했다. 어느 심사위원이 고백했다. 성결교회의 미래는 수기응모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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