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합리주의’와 ‘동고’의 시대, 목회는?

이번에 소개하는 일반서적은 박은미 교수의『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고, 신앙 서적은 최동규 교수의『포스트모던 시대의 목회』입니다.

박은미 교수는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철학자로서 쇼펜하우어의 생 철학을 잘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반합리주의 입장에 선 ‘생철학’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헤겔을 비롯한 합리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 삶의 의지’라고 주장합니다.

정신과 이성에 대한 신뢰가 확고했던 시대에 홀로 자연적 본능이 더 우세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성으로는 삶과 세계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으며, 세계란 의지가 객관화된 것이고, 의지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새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고(同苦, Mitleid)’입니다. 나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저 사람도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느라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생기고,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체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해 괴로워지고 욕망이 없으면 욕망 없으므로 인해 삶의 무의에서 시달린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삶은 결핍이 있거나 권태롭다는 쇼펜하우어의 진단에 사람들이 주목한 것도 이해가 될 만하다.

이렇게 생의 고통에 대해 썼기에 ‘염세주의’라 불렀을 터이지만 고통을 직시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동고(Mitleid)할 것을 주문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염세주의라고만 치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P. 37).

쇼펜하우어는 모든 존재가 삶에의 의지에 사로잡혀 있기에 고통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오고, 인간은 고통 자체보다도 고통에 대한 표상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 개체화의 원리에 매이지 않고 동고의 마음을 가질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최동규 교수는 서울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로서 신학, 철학, 선교학을 공부한 균형 잡힌 신학자입니다. 그의 책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교회의 존재 방식에 대한 좋은 제안을 많이 하고 있는데 특별히『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제기한 두 가지 질문 ‘반합리주의’와 ‘동고’에 대하여 가장 적절한 목회철학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성’ 중심의 목회에서 ‘감성’ 중심의 목회로의 전환입니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던 근대주의는 끝났습니다. 근대주의에 심취한 사람들은 이성으로 종교의 비합리성을 고발하고 더는 종교가 없는 시대, 과학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에 살게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오판으로 끝났습니다. 목회 역시 이성이 아닌 영성이 이끌어가는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고(Mitleid)’로서의 목회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은 획일성보다는 다양성 안에서의 통일성을 선호합니다. 자연스럽게 위대한 리더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팀 빌더(TEAM BUILDER)’형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능력이 탁월할지라도 혼자서는 목회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과 함께 일을 이뤄야 합니다. 목회자는 신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주신 비전을 향해 나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박은미 교수는 ‘동고(Mitleid)’라는 단어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아놓았습니다. “독일어 단어 ‘Mitleid’는 동정, 연민, 동고로 번역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가 ‘Mitleid’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이 중 가장 아가페적인 것이 동고이기에 동고하는 번역어를 선택했다.” (P. 36).

개체화의 원리를 극복하고 동고 하자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고통받는 인간이 남과 더불어 살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면, 최동규 교수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통해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성주의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우리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반합리주의 입장에서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생 철학을 우리에게 던진 쇼펜하우어의 공로도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감성이 터치되는 교회’ ‘아가페 사랑으로 동고하는 교회’로 세워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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