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와 기관차 & 아방가르드

‘70년대 ’에저또‘라는 이름의 극단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뱉는 간투사(間投詞)가  에~저~또~~다. 그 극단이 ’77년 공연한 「참새와 기관차」는 당시 유신체제, 그 더운 여름이지만 서슬 퍼렇던 그 시절에 겁도 없이 그 장막극(帳幕劇)을, 그것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출품하여 문공부장관상을 받았다. ‘극단 에저또’가 그 시대의 아방가르드였을까? 

힘이 없는 ‘참새’는 밀짚모자를 거꾸로 쓴 허수아비에 속아주고, 농부가 지르는 “훠-이” 소리에도 날아가 주지만, 다시 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무섭게 달려오는 ‘기관차’에 날아들면서 그 천진한 목숨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장애인들, 결말은 너무도 뻔하지만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들은 지금도 그냥 달려든다. 

덥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덥다. 뜨거운 방에서 냄새가 나도 그냥 지낸다. 끈질기다. 참새 같다. 폭주하는 기관차에 부딪혀 죽으면서도 계속 달려드는 참새들이 우리다. 스스로 장애인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는 장애인이다. 

지난 세 해의 여름과 겨울에, ‘말할 힘’조차 없었으면서도, 지금은 너무 더워 망각의 혜택(?)을 많이 누리고 소화(消化)해 가는 ‘나’를 본다.

올 겨울에도 참새들은 무섭게 돌진하는 기관차에 날아 들 것이다. 무엇을 알아서가 아니다. 그래도 슬쩍 아방가르드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나하고 주위를 돌아본다. 그리고 계속 모르면서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부딪친다. 

‘밀가루(특히 수제비)는 옆구리에 끼기만 해도 먹을 수 있게 익는다’ 것 같은 말도 안되는 말(수상소식)을 듣고 ‘그냥 하라는 대로 돌았더니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활동사진이 보였다.

그리고 수줍게 한국성결신문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요 9:3)’ 존재하는 이들과 같이 가는 ‘아방가르드 느린 열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추신(追伸): 에~ 고맙습니다. 저~ 창피합니다. 또~ 긴 사족(蛇足),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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