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의 존재, 인간삼간(人間三間)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라는 목회 수기에서 필자는 하나님을 시간을 창조하시고 사용하심으로 인간을 가르치신다는  그가 수기를 쓰는 문학적인 방법은 소설처럼 현재 진행형을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현재를 실감할 수 있는 문체를 선택한 것입니다. 주어를 생략한 경우가 많은데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시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수기의 집필은 신변잡기 형태가 무난한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이고 객관적이며 논증적인 수필의 형태를 선택한 것, 언어의 유희를 할 정도로 그의 철학적 사고와 문학적 글쓰기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존재는 세 가지 관계적 위치에 있는 틈(間)에서 파악됩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순간이라는 현재에 인식되는 시간이라는 틈, 점과 선이 면이 되고 입체적 구조 사이의 빔을 누리는 공간이라는 틈, 누군가를 살게 하고 살리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불살라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소명을 타고난 인간이라는 틈에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는 세 가지 틈새 즉 인간삼간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가는 사역의 길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란 이름의 연못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름처럼 아름답지만은 못한 곳이었습니다. 치유의 효과는 선착순, 천사의 나타남은 전설이었을 뿐이고 물이 움직일 때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경쟁해야만 하는 냉혹한 현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가 아닌 연결된 회랑의 기둥 근처에서, 예수께서 찾아오신 만남으로 온전한 회복을 얻었습니다. 

베데스다의 사역이 장소와 신화가 아닌 예수와의 만남의 자리일 수 있기를, 그리고 38년의 시간과 아비규환의 공간, 매정한 인간들 틈에 사는 현실이라도 그 사역을 통하여 주님께서 만나주시는 은혜의 집이 되리라고 희망하며 눈물을 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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