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복음화율이 3%라는 슬픈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마저도 코로나19 이전의 수치입니다. 지금은 더 낮은 수치일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들을 쫓아다니느라 내 청춘과 인생을 다 바쳤습니다. 비행 청소년을 찾아 공원을 누볐습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그들이 머무는 곳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각개전투를 15년 정도 했지만 결과는 청소년들을 만났다는 것과 그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겉으로 방황하지 않는 청소년들은 학원에 시간과 마음을 다 빼앗겨 교회에 마음 둘 여유조차 없어 보입니다. 누가 가서 다음세대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목회자들이 학생을 찾아가 여유롭게 사영리나 그 밖의 전도지를 매개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전도하려는 자세만 취하면 학생은 미리 알고 전도자를 피하는 전략으로 그 자리를 도망치듯 사라집니다. 

다음 세대가 이대로 간다면 10년이나 20년 후의 한국 교회는 유럽의 교회보다 더 빠르게 몰락할 것입니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이 아픕니다.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달해야 할 우리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플랫폼은 사람들이 모여 소비와 생산을 일으키며 문화 활동까지 하는 곳입니다. 

플랫폼에는 앨빈 토플러의 ‘프로슈머’라는 용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프로슈머는 ‘생산하는 소비자’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생산하는 소비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믿음의 백성들과 불신자들을 이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들도 플랫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생산과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이때의 소비는 시간을 빼앗고, 마음을 빼앗는 것은 기본입니다.

시간과 마음이 빼앗기면 나머지를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업에게 자신의 보물을 다 빼앗기고 있지만 누구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교회도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적 플랫폼이 되어야 하고 영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플랫폼을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 

플랫폼은 다음 세대를 만날 수 있는 영적 바다입니다. 영적 바다인 플랫폼을 만드는 일은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길러내어야 합니다. 교회당 안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고 전달하는 자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큰 교회만 할 수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적 지주인 디아만 디스의 말에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격변의 시기에 크고 느린 것들은 작고 민첩한 것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큰 건물이 유리한 것이 아닙니다. 작고 민첩하면 더 유리합니다.

작은 그룹이면 이동이 빠릅니다. 작은 플랫폼으로 뭉치고 그 작은 플랫폼이 더 큰 플랫폼이 된다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 “앞으로 10년 후에는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기업)가 세상을 지배한다.”라고 했습니다. 기업뿐 아니라 앞으로 10년 후 플랫폼을 지배하는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영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영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원리와 철학을 알려주고 경험하게 하여 그들이 복음의 전도자가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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