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비언어적 요소

아내의 무심한 몸짓에 마음 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어떤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었지만 불쾌했습니다. 느낌을 말하며 정중하게 부탁했더니 의도를 담은 게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렇게 느낀다면 제가 주의할게요.”라고 하더니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부부 사이의 작은 일이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느낌이 아닌 평가, 부탁이 아닌 강요일 때가 그렇습니다. 부부 싸움은 여타 싸움보다는 해결이 쉬운 편인데요. 그 외의 관계에서는 작은 일이 시발점이 되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어요. “인간은 개인으로서 존재하지만 개인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그가『수사학』에서 강조한 설득의 3대 요소는 에토스(인품·인격), 파토스(감성), 로고스(이성)인데요. 중요도를 에토스 60%, 파토스 30%, 로고스 10%로 봅니다.

화자의 인격이나 능력에 의심이 가는데 말을 잘한다고 설득이 되는 게 아닙니다. 입증된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실에 더 이끌린답니다. 정치 선거에서 매니페스토만이 전부가 아닌 이유입니다

앨버트 메라비언은 미국의 심리학자로 1971년『Silent Message』를 통해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비언어적 요소라고 했습니다.

비언어가 의미 전달의 93%의 중요도를 가진다고 했는데요.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몸짓) 55%, 청각(음색, 목소리, 억양) 38%, 언어(내용) 7%라는 것이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입니다.

“감정에 가장 효과적으로 호소하기 위해서는 메시지(verbal), 음성(voice), 시각 요소(visual)를 모두 ‘일치’ 시켜야 한다. 3V가 일치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하며, 내용보다 시각적 요소를 더 믿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후배와 유럽에 갔을 때 호텔 방 샤워기가 고장 났습니다. 나가는 길에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말하려고 머릿속에서 문장을 다듬는데 1초를 못 참은 후배가 ‘손가락으로 비가 내리고 입에선 샤워기 물소리를 내고 손목으로 엑스 자’를 그었더니 바로 알아들었습니다. 단지 영어 단어를 몇 자 섞었을 뿐입니다.

로고스교회를 개척하고 3년 만에 예배당을 건축할 때였는데요. 안양에 소재한 교회에 부흥 강사로 초청받아 갔습니다. 통합한 교회여서 분위기가 좀 딱딱했어요. 말씀을 전하는데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칩니다. 감정에 호소한 것도 아니었어요. 사막학교를 통과하는 청중에게 무한 공감과 위로가 됐나 봅니다. 건축 중 겪은 고난을 재구성해서 펼쳐놓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통한 겁니다.

연중 한두 주, 설교 준비와 씨름하다 불충분한 채로, 혹은 마음을 비우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천 배나 더 구하며 단에 섰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역대급 설교란 응원에 놀라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설교자의 비언어적 메시지가 전해진 겁니다.

성령님을 어느 때 보다 간절히 의지했기에 그분이 역사하신 겁니다. 허나 그 맛을 일반화시키면 이단입니다.

금요일 밤이 되면 한 주간을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온 터라 피로가 온몸을 누릅니다. 금요일 기도회는 찬양 30분, 설교 25분, 찬양과 기도회 30분으로 진행하는데요. “준비 찬양은 없다. 모든 찬양은 예배이다.” “불가피한 지각은 있지만 습관적인 지각은 나쁜 성격과 다름없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도, 사람도 쓰기 어렵다.”라고 가르쳤는데요. 어느 날 제가 하나님이 쓰기 어려운 사람의 자리에 섰습니다. 30분이나 지각을 했습니다. 예배자가 아닌 프로 강사였어요. 아무리 푼푼한 아량으로 덮는다 한들 덕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성도가 설교에 은혜를 못 받는다면 책임의 전부가 설교자의 몫은 아닐 텐데요. 성도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들리는 것도 다를 겁니다. 그럼에도 설교자는 책임 의식을 가지고 정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설교가의 베스트 설교문을 그대로 차용해도 은혜가 다 같지 않은 것은 로고스의 문제가 아니라 에토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설교자를 거부하는 건데요. 

목소리는 타고나지만 다듬을 수는 있습니다. 설교 내용도 중요하지만 목소리가 신경질적이거나 냉소가 담겼다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해서 메라비언은 “목소리가 인품이요, 성품이다. 전화 목소리를 들어보면 인간성을 알 수 있다. 단어 선택, 어순, 강약이 다 한순간에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업이나 목회를 잘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명료하면서도 정감과 친절이 담겼습니다. 첫 통화 10초면 상대가 친절, 권위, 우울, 비굴한지 느낌이 옵니다. 느리면 거만, 빠르면 약장사처럼 보입니다. 외적 언어가 아닌 몸의 언어입니다. 

리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목소리 하나, 작은 태도 하나라도 점검하고 다듬습니다. 무릎 꿇고 제자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무언의 메시지를 일체의 비결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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