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코로나로 많은 교회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은 다름아닌 교회학교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때, 60% 이상의 교회에서 교회학교 출석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교단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국성결신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집중해야 할 사역으로 목회자의 66.4%가 ‘모이는 예배 회복’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다음세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응답자의 비율이 57.7%로 절반이 넘었다. 이는 교회학교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반영한다.  

이런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금번 여름은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를 포함하는 여름 교육행사는 코로나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본격적인 첫 여름행사며, 교회를 떠나거나 소원해진 친구들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금번 여름, 90% 이상의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계획하고 있으며, 그중 75 % 이상의 교회가 오프라인으로 교회 혹은 수련원에서 행사를 계획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금번 여름교육행사는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밀러 대위의 심정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고 회복하기 위한 총력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설교는 어떤 국면에 변화를 주어야 할까? 코로나 이후 맞이하는 7월, 교육의 달이라 할 때에 특히 세 가지 국면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환대하고 ‘추앙’하라
무엇보다 이번 여름 설교의 자리는 예년 여름과 다름을 ‘진지하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번 여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춘 후 2년만에 처음 맞이하는 여름이다. 설교 또한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설교에서 고려해야 할 우선적인 부분은 설교를 듣는 청중을 진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종종 설교학의 강조점을 따라 본문의 원어적 뜻을 살피고 그것을 강단에서 조리있게 전하는 것에 주로 관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설교의 문제는 종종 전혀 뜻밖의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청중석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똑같은 말씀의 씨가 떨어진다 해도 듣는 이의 상황과 마음밭의 상태에 따라 뿌린 씨앗은 종종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교회학교 설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설교를 듣는 청중이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인식해야 한다. 또한 메시지를 전함에 앞서 그들의 마음밭을 사려깊게 살피며, 그들의 마음밭을 말씀을 받기에 합당하고 적절한 땅으로 기경(起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설교자와 교사가 열심히 준비한 말씀이라 해도 딱딱하거나 메마른 땅 위에 말씀의 씨앗은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배의 뜨거운 찬양과 기도 외에 또 다른 차원의 격려와 환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격려와 환대는 이중적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다.

첫째는 코로나 기간 동안,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여기까지 온 학생들을 향한 격려요. 둘째는 7월 여름행사를 통해 돌아온 친구들을 향한 뜨거운 환호와 환대이다.

마치 천년을 기다린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어색해진 교회가 다시 내 집처럼 편안해 질 수 있도록 뜨겁게 환영하고 환대하자. 그래서 정말 교회가 자신들을 존귀하게 여김을 느끼도록 만들자!

십대 전문 사역자인 덕 필즈(D. Fields)는『십대의 마음을 꿰뚫는 설교』에서 설교를 듣는 십대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청소년들이 설교자의 설교를 들을 때 속으로 하는 질문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 사람이 나를 정말 이해하는가?, 저 사람이 나를 염려하는가?,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가?’ 

우리의 어릴 적 기억을 돌이켜보아도 우리는 진리의 말씀 이전에 예배당만이 주었던 신나고 열린 분위기, 엄격한 학교 선생님과 다른 교회학교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예배당에 가곤 했다. 그곳에는 언제나 나를 반겨주고 환영해 주는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계셨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설교자와 교사가 참으로 필요한 때다. 설교에 앞서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과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라.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것을 열렬히 환영하라! 

대화하고 참여시키라
귀납적 설교를 태동시킨 크래독(F. B. Craddock)은 전통적인 설교강단에 중요한 통찰 한 가지를 선사했다. 그것은 강단 아래 청중이 묵묵히 앉아 설교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청중은 설교의 참여자로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곧 설교할 때, 설교자와 회중은 단순히 말하고 듣는 교사와 학생 관계가 아니라, 진리의 동반자로, 대화자로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교육의 달, 학생들을 향한 설교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예배와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향해 그 어릴 적 시골의 교장선생님처럼 훈계하듯 설교해서는 안된다. 확신과 담대함을 견지하되, 그들을 향한 우리의 설교는 상호적이며 참여적이며 소통적이어야 한다.

위대한 옛 설교자들은 설교에서의 이러한 접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다. 예를 들어 존 스토트(J. Stott)는 ‘참된 설교는 언제나 대화적인 것’(True preaching is always dialogical)임을 강조했으며,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는 설교자와 청중 간에는 ‘주고 받기’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대화적 설교의 잇점은 설교 중에 청중의 생각을 자극하며 청중으로 설교에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기회와 개방성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7월의 활기찬 분위기와 어울리는 귀납적 설교가 보다 적합하다. 주지하다시피, 귀납적 설교 방법은 전통적인 연역적 방법과 달리, 인간의 특별한 경험으로 시작하여 복음의 놀라운 결론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청중의 자리와 설교 전개 과정에서 움직임(movement)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귀납적 설교는 무엇보다 청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설교하는 내내 그 관심을 지속시켜준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더욱 유용하다. 일방적으로 미리 결론을 내리고 말하기보다, 함께 떠나는 진리의 여행의 동반자로 그들을 초대하고 대화하고 소통함으로 진리의 영광스러운 결론을 향해 나아가라. 

최고의 보석을 선택하라 
설교는 성경에서 나오지만, 동시에 청중에서 나온다. 성경적인 설교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은 성경과 설교 준비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설교를 듣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놓치는 것이다.

해돈 로빈슨(H. Robinson)은 이러한 실수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청중들이 누구인지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여름 강단은 어느 때보다 설교 주제의 적시성이 중요하다. 금번 여름 강단은 정해진 교육과정을 넘어 학생들에게 참으로 시급하고 적합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비록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귀하지지만, 모든 주제와 모든 성경구절이 모든 상황에 적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의 왕자, 스펄전(C. H. Spurgeon)은 말한다. “비록 모든 성경이 좋고 유익하지만 모든 본문이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보석들 중에서 우리는 현재의 정황에 가장 알맞은 보석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즐거운 하나님의 집 
어렸을 때, 7월이 오면 설레임으로 이런 찬송을 힘차게 부르곤 했다.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그 찬송은 이렇게 끝난다.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아~, 진리의 성경말씀 배우러 가자”

실로 그러하다! 금번, 여름 강단은 단순한 배움의 장을 넘어 학생들을 향한 ‘추앙’과 환호, ‘그립고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으로의 교회의 가치와 소중함에 관해 선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새롭게 닥칠 시대의 중력을 이길 수 있도록,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이 깊이 각인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의 광풍과 비바람에 흔들린 어린 묘목 같은 우리의 아이들이 시냇가에 심기운 든든한 느티나무로 훌쩍 자라는 복된 여름이 되기를 간구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