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의 삼중적 감사

맥추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이다.

맥추절은 성경에서 여러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맥추절은 농사지은 밀의 첫 열매를 바치는 절기인 까닭에 ‘초실절’(출 34:22)이라고 한다.

맥추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까닭에 ‘오순절’이라고도 하며,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씩, 7주간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인 까닭에 ‘칠칠절’(레 16:9~12; 민 28:26~31)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맥추절은 밀의 추수를 넘어 중요한 역사적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구약시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때가 맥추절이며, 신약시대, 주님의 부활 후 성령께서 강림하신 성령강림절 또한 이때다.

이와같이, 성경적으로 맥추절과 오순절은 같은 날이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맥추절인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감사절은 시기와 상관없이, 7월 첫 번째 주일로 구별해서 지키고 있다.

맥추절은 한국에서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전반기 농산물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 시작되었다. 선교 초기 대부분의 한국민들은 이모작을 하던 농경사회에 살았는데, 봄철의 주된 농산물인 보리를 6월 초, 중순에 수확했다.

그런 까닭에 보리 수확과 관련하여, 한 해의 절반이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되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지키게 되었는데, ‘맥추감사절’은 맥추절에 감사라는 단어를 붙여, 가을의 ‘추수감사절’과 함께 감사절의 의미를 강조하게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 변하지 않는 진리
어떤 분들은 현대의 많은 사람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데, 맥추감사절을 굳이 지켜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교인들이 더 이상 농경 문화 속에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맥추감사절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야 할 절기인가? 영국의 존 스토트(J. Stott)는 하나님의 계시 본질(가르침, 약속, 명령)과 그 계시가 주어진 당시의 문화적 옷을 구분할 필요를 인정하면서, 문화적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시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영원하며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문화적 옷을 입고 있는 계시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토트에 의하면, 이에 관해 세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째는 전적인 거부(total rejection)로, 그 문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선택권은 기계적이며 딱딱한 문자주의(wooden literalism)로, 계시와 문화에 동등한 권위를 부여하고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기와 목욕물을 같이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토트는 이러한 접근을 거부하고 더욱 현명한 방법으로 문화적 조옮김(cultural transposition)을 권한다. 문화적 조옮김은 성경의 본질적인 계시를 인식하고 그 계시를 주신 문화적 형태로부터 분리하여, 계시의 진리는 동일하지만 문화적 표현을 달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적 조옮김은 아기는 놓아두고 목욕물만 바꾸는 것이다. 이는 인도의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가 복음의 ‘귀화’(naturalization)라고 부른 그것으로, 복음을 토착적인 문화 형태로 조옮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의 맥추절을 한국 상황에 토착화한 형태인 맥추감사절은, 농경 사회에서 도시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도 계시의 문화적 조옮김의 형태로 보존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절기가 담고 있는 계시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속에 보존되고 계승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맥추절 속에 담겨있는 계시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의 핵심은 ‘감사’이다. 그것은 우리의 소출과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로만 비롯됨을 인정하는 감사이다.

따라서 우리는 농경사회든, 도시 사회든 그 문화적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이 절기가 기억하기를 원하는 ‘감사’라는 본질적인 메시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감사는 맥추절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차원의 확장이 가능할 것이다.

소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주지하다시피, 성경의 맥추절은 농사지은 밀의 첫 열매를 바치는 절기이다. 
맥추절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받아먹고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농사를 짓고 수확한 첫 곡식을 드린 절기이다.

애굽을 떠나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그 땅의 소산을 먹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비록 그들이 수고했을지라도 그 소산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돌보심과 일하심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잘 알 것이다. 땀 흘려 씨 뿌려도 때를 따라 단비와 알맞은 햇살을 주시지 않으면 그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을 말이다.

이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예외가 아니다. 비록 우리의 생존과 생명의 보존을 위해 애쓴다할지라도 우리의 생명과 그것의 보존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시 127:1~2)

따라서 농사를 짓지 않는 성도들이라 해도 맥추절의 본질적 의미를 묵상할 때, 생명의 식탁을 대할 때, 그 음식과 과일이 오기까지 하나님의 온 우주가 참여해 마련한 것임을 상고하며 감사할 수 있다.

또한 맥추절의 감사는 여전히 산적한 현재의 문제들, 곧 국내외 경제적 악재들, 금리와 물가의 상승, 취업과 진학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은혜로우심에 관한 감사로 치환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맥추절을 풍요로운 물질 사회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에 대한 감사를 잊는 영적 교만을 경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하게 될 영적 위험들에 관해 이렇게 엄중히 경고하셨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이런 의미에서 한 해의 절반, 한 가운데 위치한 맥추감사절은 여전히 중요한 영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리의 먹고 마시는 생존과 보존의 문제가 종국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으며,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떡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라
서두에 언급한 바처럼, 맥추절은 곡식을 추수한 절기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절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육적 양식을 위해 밀과 보리를 주셨으며, 당신의 백성의 영적 양식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절기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셨다. (마 4:4)

또한 당신은 우리를 위해 친히 생명의 떡이 되시고, 영적 양식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살을 참된 양식으로, 자신의 피를 참된 음료’(요 6:55)로 제공하신 주님이시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이 시기, 당신의 교회와 백성의 생명과 생기를 위하여 성령을 장대비같이 내려 주셨다. (이와 관련해서는 ‘성령강림 주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참고하라)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통해 밀과 보리를 통해 육체적인 생명을 지속하게 하신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을 위해 친히 생명의 떡이 되신 성자 예수님과 생명과 생기의 영으로 우리를 일으키시는 성령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반환점을 지나며
맥추절은 공교롭게도 한 해 중 정확히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 주일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여기까지 순례의 여정을 이끄신 주님의 은혜를 회고할 수 있는 최상의 주일이다.

지난날 베푸신 그 분의 은혜를 생각할 때,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될 순례의 여정을 준비하며, 감사와 용기의 줄로 신발을 동여맬 수 있다.

맥추감사절은 우리를 향해 말한다. 삶은 온통 신비라는 것, 삶은 온통 은총이라는 것. 우리의 불충과 부덕을 생각할 때, 감사와 감탄 외에 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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