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5월, 취임한지 두 달쯤된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T.V.의 100분토론에 출연했다. 당시만해도 아직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때여서 대통령의 100분토론은 파격이었다. 그 파격의 틈을 비집고 어느 대학교수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처음엔 기대를 걸고 지켜보았으나 결정적일 때 그 기대를 실망시켜버린다는 뜻으로 ‘놈현스럽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사실을 아시는가”라고….

▨… 조금은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이었음에도 두 달여의 대통력직 학습 효과탓이었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바로 얼마전의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어느 젊은 검사가 아픈 곳을 찌르자 “이쯤되면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고 씩씩대며 얼굴을 붉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대화를 이끌어 ‘노무현은 과연 노무현’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 그 100분토론의 여파가 엉뚱하게도 우리 성결교회의 어느 이름없는 목사를 흔들었다. “놈현스럽다”는 표현이 목사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까발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쫓겨 자신의 매 주일의 설교를 돌이켜 보니 과연 놈현스럽다는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었노라고 그 주일의 주보에 고백했다. “주일마다 아무개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어. 정말, 놈현스러웠지라고 해도 할 말 없습니다.”

▨… 목사라면 누구나 이 주일에는 어떤 말씀을 증거할까 하고 한 주간 내내 머리를 싸맬 것이다. 신문을 읽어도, TV를 켜도 심지어는 운전대를 잡고 있어도 이 주일의 말씀증언의 주제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헛다리만 짚고 갈보리 산정의 십자가를 단 한 번도 성도들이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지 못했다면…. 그 설교를 들으며 안쓰러워하는 눈길을 뉘라서 피할 수 있을까.

▨… 1980년 대의 서울신대 신학강의실에서 어느 교수가 말했다. 설교는 설교자에게는 ‘시즈프스의 바위’ 같은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증언되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제기할 필요도 없다. P. 틸리히의 질타처럼 예수의 그리스도됨은 인간의 언어로는 그려낼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언어로 이뤄진 설교는 애초에 불가능한, 성공이라고 확인할 때 다시 굴러떨어지는 시즈프스의 바위라고 정의되어야 한다. 이 슬픈 실패를 따스한 미소로 감싸주시는 예수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목사들은 ‘놈현스러움’을 감내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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