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매력이자 파급력 중 하나는 특정 단어에 담긴 의미의 다양성을 통해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점에 있다. 

그런 사례가 출애굽기에서 여러 사건의 매개로 등장하는 ‘지팡이’(: maṭṭê)라는 단어다. 이 용어는 ‘(포도나무) 가지와 장대, 회초리’ 등의 기본 뜻과 ‘부족이나 지파 또는 창과 왕의 홀’처럼 확대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지팡이는 무엇보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사이의 필연적인 언약 관계를 전제하며, 지도자와 백성들이 율법을 준수하면 왕과 같은 복을 받을 거라는 교훈을 암시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충을 저지를 때, 그 지팡이가 회초리나 창이 되어 이스라엘을 징벌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똑같이 강조한다.

따라서 지팡이는 축복과 처벌의 양면성을 지닌 신학적 매개이며, 정치적 압제와 신앙적 박해로부터 탈출하는 모든 여정의 주도권이 철저히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잠재적으로 상징한다.

이와 같은 성경의 교훈이 신자들의 현실 속에 적절히 접목되면 좋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즉 하나님을 향한 경배 대신 인간 자신의 자율적 이성과 세속적 경험을 절대화하며, 개인이나 공동체로서의 인류가 스스로 왕의 지위에 오르는 경우가 그에 속한다.

또 자신과 소속 집단의 큰 잘못에 대해서는 무한한 관용을 베풀면서 타인의 작은 실수에는 창과 회초리를 연상시키는 잔인한 처벌을 망설임 없이 휘두르는 사례도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

하나님만이 온전한 근원과 목적의 가치를 지닐 당위성이 지팡이라는 비유에 담겨있으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탐욕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그릇된 인간의 야심이 지팡이를 자기 손에 쥔 창이나 왕의 홀로 착각하는 비극적 결말로 변질시키는 셈이다.

출애굽기에서 지팡이가 주요 소재로 묘사된 점은 이런 교훈이 단지 교회의 경계에 제한될 수 없으며, 여타 사회 집단에 비슷한 가르침으로 전달될 개연성을 표명한다. 그리고 그런 논리적 확장성은 모세의 지팡이가 편협한 종교적 맹신과 차원이 다른 전체 인류의 본질적인 존엄성 설정을 위한 잣대라는 취지를 반영한다. 

선천적 신분이나 후천적 환경에 의한 차별과 편견이 법과 제도로 정당화되던 고대 사회에서, 구원의 근원이자 종착역인 하나님이 집권층이나 부유층 대신 유일한 경배 대상으로 설정된 점은 실상 낮고 천한 계급의 백성들을 위한 특별 조치인 까닭이다.

굳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풍족한 삶을 누리는 고위층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도권을 인정하라는 요청은 오히려 성가시고 일방적인 간섭으로 비칠 수 있으며,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위상을 능동적으로 강화한 신학적 명제는 기득권층의 구조적 부정부패에 맞서는 정의와 사랑의 구체적 표현 양식이라는 해석이다. 

대통령과 지방정부의 일꾼을 뽑는 국가 차원의 선거가 종결되었고, 교단의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총회 역시 마감된 시점에 선출된 이들에게 위에서 설명한 지팡이의 지혜가 확실히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리더십의 기준과 향방이 오직 하나님을 염두에 둔 믿음과 신념에 기초해야만, 선하고 의로운 결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을 배제한 정치 이데올로기나 정당 또는 계파의 이익이 선행한다면, 하나님의 지팡이는 회초리로 변모되어 변질된 리더십 집단을 무서운 심판의 나락으로 빠트릴 공산이 크다. 어쩌면 성경의 저자는 모세와 그의 후손에게 그 사실을 단호하게 경고하는 방법론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성경의 메시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확고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독자적 생존을 추구하다가 완전히 멸망하는 역사를 끝없이 반복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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