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와 성결교회: ‘예수와 함께’의 교리적 의미

성서 자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구원의 역사와 사실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요? 성서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왜 이 모든 역사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걸까요?

우리에게 전해주는 구원의 진리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대해서는 성서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서가 가장 뚜렷하게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 역사와 함께, 그리고 시간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와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을 성취시키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약속(계약) 때문에 그리고 그 계약을 성취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특히 모든 구약의 핵심 구절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에서 드러납니다. 이후 모든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계약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고난 받는 종,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종말론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이 신약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성취일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임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하시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오로지 성결함의 사건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예수와 함께, 예수로 시작하는 새로운 성결교회는 바로 이 복음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개신교의 핵심인 칭의론은 사실 성서적 구원론의 첫 단계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칭의의 사건은 바로 성화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기보다는 성인인 동시에 죄인이 더 정확한 성서적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성결교회 신학의 기초인 웨슬리 신학의 특성이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웨슬리 신학은 성령의 감동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은 이제 회개하고 칭의한 다음 성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변화된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서 또 다른 두 번째 은총, 곧 기독교인의 완전이라는 길로 나가게 됩니다. 실제로 웨슬리가 보기에 기독교의 참된 목적은 이 성결의 실현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화의 신학으로서의 웨슬리 신학이 이전 그 어떤 신학과 달리 역동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성령의 능력을 갖춘 종말론적 성격 때문입니다.

웨슬리 신학의 공헌은 기독교의 복음을 칭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성화로 이해하게 합니다. 성서의 복음은 칭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결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웨슬리의 이런 성화 해석이야말로 오순절에 초대 기독교가 경험한 종말론적 완성을 철저하게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그것도 매우 성공적인 해석입니다.

우리의 자랑인 사중복음을 사중복음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웨슬리 신학입니다. 중생에서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결의 능력을 신유의 능력으로, 그리고 종말론적 역동성을 찾게 하는 사중복음의 내용은 웨슬리 신학의 복음 이해를 통해 작동하게 됩니다. 웨슬리적 복음 이해 속에서만이 이 사중복음은 사중복음으로써의 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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