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관계론

존경하는 선배의 “단 한 사람에게도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라는 말을 인간관계의 원칙으로 삼고 따르려 했는데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기준을 높이 두고 스스로 경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의 인간관계 철학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설익은 사람이 따르기는 참 버거웠습니다. 30년이 지나고 보니 숱한 인간관계를 통해 남은 것은 아련한 자기 위안과 상당한 후회도 함께입니다.

연꽃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빗물만 담는데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까지 담으려 했던 겁니다. 돈과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 전전긍긍하다가 중요한 사람과 보내야 할 충분한 시간을 놓쳤는데요.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시간도 잃었다는 겁니다. 

게리 토마스는 『고통스런 관계 떠나기』에서 사복음서를 연구한 결과 예수님이 사람을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마흔한 개의 사례에서 중복된 부분을 제외하니 스물네 번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관계를 ‘독이 되는” 관계라고 정의하는데요. 독성을 통제, 조종, 정서적인 수치심, 명예훼손, 가스라이팅(Gaslighting)으로 봅니다.

‘독이 되는 사람’은 열정을 꺾고 무너뜨리며 사명을 파괴합니다. 책임을 전가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타인을 비난하기 좋아합니다. 

저자는 독이 되는 사람을 상대하는지 알 수 있는 진단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접촉하고 나면 거기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그와의 관계가 당신의 평온함, 즐거움, 용기, 희망을 파괴하는가? 다른 건전한 인간관계에 대한 당신의 여력과 참여를 방해하는가? 살의를 드러내는가? 조종당하는 기분이 드는가? 만나고 나면 위축되는가? 그 사람은 분함, 노여움, 악의를 드러내고, 비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을 할 때 활기를 띠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과는 유익한 관계가 불가능합니다. 

저자는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는데요. 독이 되는 아버지의 접근 금지 명령을 법원으로부터 받아 내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합니다.

독이 되는 아버지가 찾아옴으로 평범한 일상, 사역, 사명이 깨졌기에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사명이 이끄는 삶을 사는 게 이타적인 선택이란 말에 동의합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대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독이 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건강한 방법으로 대하는 게 맞습니다. 

“모든 이혼은 죄에서 비롯하지만 모든 이혼이 죄는 아닙니다. 부모와 떨어진 아이의 모든 행동의 배후에는 죄가 있지만 학대하는 부모에게서 아이를 떼어 놓는 것이 언제나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인간관계의 파괴는 죄에서 비롯하지만 거리를 두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독이 되는 사람을 가끔 만나는데요. 잘 해보려 했지만 언제나 독에 찔렸습니다. 결단했습니다. 그에게서 멀어지기로, 그에게 잘하려 했던 육신의 생각을 버렸습니다.

주님도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라고 하셨는데요. 누군가를 개나 돼지라고 정죄할 권한은 없지만 분별할 자유는 주셨습니다. 비판은 죄이지만 거리를 두는 것, 조용히 떠나는 것을 주님께 배웁니다. 떠나기로 했습니다. 

게리 토마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실행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요. 수려한 문체와 글에 담긴 그의 영성은 치료제였습니다.

“내 리더십이 싫은 사람은 다 떠나도 좋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담을만한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주님의 마음인데요.

떠날지 남을지는 그의 자유인데요. 결과를 떠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모르니 열어놓고 최선을 다하는 게 겸손입니다.

하지만 떠난 사람에 대한 상처가 독이 돼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큰 어리석음입니다.

주님도 담지 않은 사람을 담으려는 것은 교만인데요. 끝까지 품고 사랑해야 한다는 믿음의 덕성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다하기 위한 지혜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인간관계는 친구를 만들고 적을 만들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는데요. 만들지 않으려 해도 적은 생겨납니다.

독이 되는 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피하는 겁니다. 자기의 관계망에 독이 되는 사람이 없다면 참 좋을 텐데요. 관계망에서 독이 되는 사람이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유혹입니다.

독이 되는 사람을 없앨 수는 없지만 멀리할 수는 있지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거리를 둘 수는 있습니다. 거리를 두는데도 독을 뿜어 댄다면 기꺼이 떠나야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떠나셨어요. 독이 되는 그 사람에게서. 그리고 중요한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