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선생, 돌아오는 부활절에는 꼭 세례를 받으세요.” 목사님이 말하였다. 그러자 김 선생이라는 청년이 물었다. “목사님, 세례는 왜 받아야 하나요?” 이 질문을 받은 목사님은 갑자기 받은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해지면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응? 그거, 받으면 좋은거야.”하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세례에 관한 강의를 할 때 한 목회자가 했던 솔직한 고백이다.(조기연, 『기독교 세례예식』)

▨… 조기연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 목회자의 고백을 세례에 관한 한국교회의 인식의 한 단면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에 성례전으로서의 세례예식이 있기는 있되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성례전이라니까 하기는 하는데 그 기능과 효력을 상실한 것이 한국교회의 세례가 아닌가 싶다고 조금은 난감해 하면서도 소신을 밝혔다.

▨… 조기연 교수가 밝혔듯이 세례는 한 사람의 자연인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사건이기에 세례받지 않은 자는 구도자의 신분일 뿐이다. 따라서 초대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수세자만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이 지적은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만 교회와 연합할 수 있음을 밝혀준다. 세례에 대한 이같은 이해는 우리 교단이 변함없이 지켜온 교리이며 믿음의 고백이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결인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또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 예배의 의무를 다하도록 부름받았음을 감사해야 한다. 세례는 ‘받으면 좋은 것’이어서 받는 것이 아니다. 세례는 받는 그 즉시로부터 십자가 고난에의 동참을 결단하는 것이어야 한다. 초대교회에서는 그 십자가 고난에의 동참이 순교로 이어지는 일까지도 비일비재했었다.

▨… 요즈음에는 교회들도 자본주의 생리에 익숙해지고 있는 탓일까. 교회의 발전과 부흥을 숫자에 의존해 정의하려는 교회들이 증가하면서 세례교인 확보가 교회의 발전을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그 결과로 교단의 세례교인 수 통계가 제멋에 겨워 춤추듯 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너무 쉽게 세례를 베풀어 세례가 하찮게 여겨지는가 하면 총회비 때문에 세례교인의 교적을 가볍게 정리하는 교회도 있어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라는 긍지마저 깨진 질그릇처럼 천더기가 되고 있다. 세례를 베푸는 자들이 세례의 참된 의미 앞에서 먼저 각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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