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희생의 법칙

『영웅은 필요 없다(It doesn't take a hero)』는 걸프전에서 다국적군을 승리로 이끈 노먼 슈워츠코프의 자서전인데요. 출간 전부터 대형 출판사의 출판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화제가 됐습니다.

존 맥아더 장군 이후 걸프전 영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는데요. 정작 장군은 “영웅은 필요 없다”라며 전역 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할 때는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상관의 명령에 불복했고 연대장은 그 일로 진급하지 못했습니다.

작전 중 지뢰를 밟아 발목을 잃고 피를 흘리며 나뒹구는 부하를 구하기 위해서는 직접 지뢰밭에 들어가 병사를 업고 나왔습니다.

게다가 부상병이 흑인이었는데요. 당시 백인 대대장이 흑인 사병을 위해 지뢰밭에 직접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용기와 사랑에 그를 부하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을 미뤘던 부흥회가 잡혔는데요. 이틀 전 아내가 확진됐습니다. 자가 키트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며칠 후 양성이 뜰 확률은 대단히 높아 보였죠.

사정을 설명하면 연기하자고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담임목사님은 선임 장로님과 상의를 할 터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몇 분 후 답이 아닌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백신 3차 접종을 했느냐?” “지금 열은 나지 않느냐?” 하시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하자고 했습니다.

거절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기에 몇 분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출발했습니다. 주일 밤부터 시작하는 집회는 피로도가 큽니다.

과거에 에너지 관리를 잘못해서 몸살로 아쉬움을 남겼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 터라 주의를 기울였는데요. 코로나 감염 가능성까지 열려 있던 터라 긴장은 배가 됐습니다.

첫날밤 집회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니 탈것을 제공하신 장로님의 문자가 남아있었습니다. “프런트에 해열 진통제 놓고 갑니다.”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약 먹고 숙면을 취해서 미리 예방을 하라는 건가?’ 아니면 ‘혹 열이 나도 내색하지 말고 이 약 먹고 집회를 끝내란 건가?’ 피곤이 몰려와 프런트에 가지 못하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푹 자고 일어나 새벽 집회를 가면서 물었습니다.

“장로님, 해열 진통제 누가 준비해 주신 겁니까?” “선임 장로님입니다.” “약을 주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아니요. 별말씀 없이 그냥 강사님 드리라고 하셨는데요.” 진통제를 ‘무한 충성’으로 읽고 해열제는 ‘집회 완주’로 해석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왔습니다.

약 11년 전 예배당 건축할 때 당회원 중에 건축에 관한 지식을 가진 분이 없었답니다. 선임 장로님은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이 2년 남았는데도 퇴임하고 건축위원장을 맡아 충성을 다하셨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입당 후 장로님 부부는 월요일 새벽기도를 마치면 교회 각층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데요. 무려 11년간 계속됐습니다.

예배당이 입당 3년 정도로만 보였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본당, 계단 높이, 자재 하나하나 감동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선임 장로님이 첫날 저녁 식사를 대접하셨는데요. 코로나 양성의 가능성이 있는 강사와 함께하는 식사라니, 모르드개의 절박한 강권에 “죽으면 죽으리이다.” 고백한 에스더가 생각났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부흥회를 연기하는 게 보편적인 지혜라 생각했는데요. 코로나로 인하여 지치고 예배에서 멀어진 교회를 깨우고 싶으셨던 절실함이 느껴졌습니다.

“걸리면 걸리리다”라는 결단으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길어진 코로나 뒤에 숨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았어요. 무모한 리더십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참석하기에 감염 확률도 계산하셨을 겁니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수준 높은 장로님이 계시면 담임목사가 좀 피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담임목사님은 장로님을 존경하고 동행하는 목회를 하셨습니다. 겸손과 본질로 무장하고 성서를 이해하고 깊은 묵상으로 얻은 깨달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두 분은 통찰과 행동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왜 오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의심했지만 ‘순종’을 통해 코로나 중에도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패턴이 있는데요. 고난 뒤 영광, 죽음 뒤 부활, 희생 먼저 열매 다음입니다. 내려간 그 길이 주님 가신 골고다 길은 아니었지만 집회를 열고 기다리며 함께 했던 길이 그분들께는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팀 켈러는 “참된 사랑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랑하는 대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건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사랑하고 영적인 갈급함까지도 채워주려는 지극함을 배웠습니다.

영웅은 필요 없습니다. 희생, 오직 희생이 필요할 뿐입니다. 참! 저는 아직까지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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