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교회)

‘임계점’이라고 하는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있습니다.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다른 상태로 바뀌는 지점의 온도 또는 압력을 일컫는 용어로써, 예를 들어 물은 99도가 임계점이 됩니다.

1도가 더해서 100도가 되면 물은 그 성질이 바뀌어 수증기가 됩니다. 우리네 인생의 임계점이 있습니다.

자족함입니다. 만일 자족함에서 1도 만이라도 더해서 욕심을 내면 패망합니다. 아흔아홉 개를 가지고도 자족할 줄 모르고 임계점을 넘어버린 다윗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참 많은 것을 탐내며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에서부터 사람까지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권력을 차지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욕심의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원망도 욕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내산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만나를 보며 신기해했던 그들이 이내 싫증을 내며 하나님께 음식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섞여 사는 무리들’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섞여 사는 무리’(히. 베하아싸프수 민 11:4)라고 번역한 말은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를 정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모으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사프’에 뿌리를 둔 이 말을 국어성경이나 KJV에서는 ‘섞여 사는 무리’(히. 베하아싸프수)라고 번역했고 NRSV는 ‘하층민’이라는 뜻의 ‘rabble’로 읽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른 혈통의 사람들로서 그저 모여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시킨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하였는데(민 11:4), ‘품었다’로 번역한 말은 ‘탐욕’이라고 번역한 ‘아바’의 ‘히트파엘’ 형태의 동사입니다. 직역하자면 “그들이 반복해서 욕심을 내었다” (민 11:4)하는 의미입니다.

‘금어초’라고 하는 꽃이 있습니다. 모양이 금붕어처럼 닮았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입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인데 ‘악마의 꽃’ 혹은 ‘해골 플라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아름답던 꽃이 시들기 시작하여 마치 해골 모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끝내는 무섭고 끔찍한 해골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끔찍한 해골과 같은 죄를 짓는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품지 말았어야 할 욕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야곱이 자수성가하여 금의환향을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는 야곱의 형 에서가 자신의 세(勢)를 과시하기 위함일 수도 있으나, 결코 우호적인 목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곱을 맞이하고자 하는 에서에 대해서 ‘홀레크’(창 32:6)라고 하는 분사를 사용한 것을 보면 그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심히 두렵고 답답’(창 32:7)한 마음에서 야곱은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하게 되었고 천사는 그의 환도뼈를 침으로써 그가 힘을 쓸 수 있는 부분을 해체시킵니다.

그래도 천사를 놓아주지 않자 천사가 야곱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이때 그가 “야곱이니이다”(창 31:27) 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남의 것을 탈취하여 빼앗으며 사는 자’라고 하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자족의 임계점을 넘어 품지 말아야 할 욕심을 품는 부끄러운 자신을 주님 앞에 드러내십시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품지 말아야 할 욕심을 품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처럼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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