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눅 24:13~35)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은 실제로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두 명의 제자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 그리고 사역을 펼치며 살아가야 할 자리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소망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전초기지와 같은 예루살렘을 떠나 실의에 찬 채,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의에 차서 세속의 도시로 내려가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하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부활의 경험이 아닐까요?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였던 자리에서 실패를 맛보고, 소망 없이 세상으로 내려가고 있는 자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소망을 주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누구나 의심할 수 있어! 확신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흔들릴 수 있어! 신앙이 성숙하기까지는!’ ‘누구나 쓰러질 수 있어! 세상이 만만찮으니!’ ‘넘어지면서 성장해 가는 거야! 그때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마!’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바로 잡아 주시기 위하여 취하신 방법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첫째, 제자들과 동행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모습을 큰 영광스러운 세레모니와 함께 그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한 번의 놀랍고 경이로운 임팩트는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믿음을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그들과 동행해 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의 대화에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절)고 물으셨던 것이지요. 제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더 깊이 파악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들과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셋째,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따랐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단지 로마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로만 바라보았습니다(21절). 당장 시급한 자신들과 관련된 일들의 해결자로만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중에 나타날 메시아에 대하여 말한 예언이 바로 자신을 향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지요.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셔야 함”을 말하고 있는데, 왜 너희들은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섯째, 제자들에게 성찬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식탁의 교제를 나누며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성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찬은 유일하게 예수님이 제정하신 예식으로,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구약의 메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제자들이었지만, 메시아가 받아야 할 고난을 십자가와 연결시키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제정한 성찬을 베풀어 주심으로,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을 연결시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섯째, 순서의 시간적인 차이는 있지만,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 뜨거워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원문의 의미로는, ‘불 타오르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말씀을 풀어주실 때 시작하여 뜨겁게 하시더니, 성찬을 통하여 닫혔던 눈이 열려지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제자들은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늦은 감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없고,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은 부활의 증거도 들었고 현장도 보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부활의 증거와 현장만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케 해주는 요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기적과 이적들만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내려 가던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신시켜주셨던 방법은 말씀과 성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깨달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흔들리고 넘어질 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흔들릴 수 있고 흔들려도 괜찮다. 넘어질 수 있고 넘어져도 괜찮다. 주님이 옆에 계시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신앙의 흔들림과 넘어짐의 순간을 실패라고 정의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다시 일어날 때이고 회복할 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날 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