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 젊었던 나이에 징역살이하고 있던 신영복이 대민지원을 나갔다. 남의 논 아홈 마지기 부친다는 일흔 넷의 가난한 할아버지의 논이었는데 새참 국수 먹기도 민망한 어려운 살림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논배미서 일하는데 점심밥 못 내와서 면목없어 하고, 국수 날라온 아주머님은 직원들이 안된다 해서 막걸리 한 잔 못 드려 면목없어 하고, 대민지원자들은 솜씨 없는 터수에 국수만 축내어 면목없어 하고…. 이래저래 면목없는 대민지원이었다.

▨… 그러나 실로 오랜만에 받아본 한사람씩의 일꾼 대접은 그들이 그동안 잃어버린 채, 그리고 잊어버린 채 살아온 귀중한 것을 잠시나마 회복시켜 주었다.(참고:『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이 “잃어버린 채, 그리고 잊어버린 채 살아온 귀중한 것”으로 표현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 아니었을까 하는 어줍잖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답을 신영복은 스스로 밝혀주었다. 마치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해 목사가 설교하듯하는 일갈로….

▨… “비록 가을 들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는 삶의 어느 터전에 처한다 하더라도 자기 몫의 일에 대하여, 이웃의 힘겨운 일들에 대하여 결코 무력하거나 무심하지 않도록 자신의 역량과 심정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징역살이라 하여 예외일 수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유는 다르다 해도 이 글에선 문득 본회퍼 목사가 떠오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무슨 망언이냐고 꾸중들을까.

▨… 아니다. 아닐 것이다. 한국성결신문을 보고 애오개를 읽는 사람이라면 본회퍼가 아니라 한국성결시문 제1314호(2022년 4월 23일자)의 장애인주일 특집을, 전교인 15명(반은 장애인)으로 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개설한 새움교회를, 그 교회 담임 현찬홍 목사를,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어 징역살이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 연후에 신영복의 일갈이 떠오르면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소지가 있었던 것 아닐까, 자문하게 될 것이다.

▨…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019년 말 현재 등록장애인 수는 261만 8,000명으로 전체인구비 5.1%이다. 미등록장애인 수는 제외하더라도 교회마다 교인 수의 5%는 장애인이어야 비율이 맞는다. 신영복 식으로 표현하면 장애인을 5%도 교인으로 끌어안지 않고 있는 교회는 주님 뵐 면목없어나 하고 있는지, 출근 길의 전철에서 몸부림치는 장애인의 호소를 들을 귀나 있는지는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다운 교회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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