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이 낮은 사회 세계역사에서 부강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다. 개방적이고, 약자의 어려움을 잘 보살폈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지하철 시위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중에 장애인 문제를 다룬 영화 『복지식당』이 지난 14일 개봉됐다.

정재익·서태수 감독이 공동연출한 이 영화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청년이 주인공이다. 청년은 홀로 거동조차 힘든 중증 장애인이지만 경증의 등급을 받아 전동 휠체어 할인구입, 장애인 콜택시 이용,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일자리를 얻고 사회활동을 하려면 이동이 필수다. 자신이 중증 장애인임을 증명해서 중증 등급을 받아야 이동할 수 있는 혜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탁상행정과 법조문을 내세우는 관리들을 상대하며 혼자서 그것을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장애인들의 실태를 살피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도식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차별적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허울뿐인 등급제는 오히려 장애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가 될 뿐이다.

혼자서는 일어서기도 힘든 장애인이 스스로 이동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가며 자신이 중증인 것을 증명하고, 변호사를 사서 재판에서 이기고, 스스로 일해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세상의 높고 많은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도전한다.

생명은 더없이 고귀하기에 좌절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남의 도움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볼모로 마구잡이 시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인식은 지독한 편견일 뿐이다.

나는 시각장애 1급, 지체장애 1급의 중복장애인 J전도사를 가끔 만난다.

여고를 졸업하고 꽃다운 나이에 원인 모를 바제도병으로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녀는 홀로 지팡이를 짚고 더듬어 다니다가 안산 상록수역에서 발을 헛디뎌 철로 아래로 굴러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먼 길을 혼자 오가며 신학대학을 다녔다. 시각장애인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J전도사는 음성프로그램을 이용해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타이핑을 해서 문자를 입력하면 음성프로그램이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를 소리로 읽어준다.

J전도사는 인터넷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수백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왔다. 문자를 소리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은 장애우가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지난 겨울 J전도사의 장애우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하며 즐겁게 지냈다. 내가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했더니 이미 예약할 때 그들이 값을 지급한 상태였다.

“장애인인 저희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먼저 계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나눈 한 시각장애인 대학원생은 어려서부터 여러 교회의 초청을 받아 간증과 찬양을 해왔는데, 사례비를 꼬박꼬박 모아 방송 장비가 열악한 작은 교회에 성금으로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한 등산은 감동으로 남아있다.

4월 20일은 국가에서 정한 장애인의 날이고, 24일은 성결교단이 정한 장애인 주일이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섣부른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이동권을 해결해 달라고 시위하는 그들에게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볼모로 삼지 말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차마 할 짓이 아닐 것이다.

발을 헛디뎌 철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장애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그런 말은 나올 수가 없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보면 높이 3㎝의 턱이 있다. 그 턱만 없애도 장애인의 세상은 완전히 바뀐다고 한다.

점차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곧 장애인 사회가 현실이 될 것이다. 비장애인도 나이가 들면 결국은 장애를 겪다가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세계역사에서 부강한 나라의 공통점이 있다. 개방적이고, 약자의 어려움을 잘 보살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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