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랠리 페이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인들이며,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며 혈통으로는 유대인들이다. 이들의 기업가 정신은 ‘후츠파’라고 표현하는데 그 뜻은 ‘뻔뻔스러움, 주제넘은, 당돌함’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의 후츠파는 셰익스피어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책 속에는 샤일록이라는 인정사정없는 고리대금 업자가 나온다. 그러나 많은 것을 소유해 부러운 것 없다고 여겨지는 유대인들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행복지수가 낮은 민족에 속한다.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관념은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거만하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장쑤, 스촨, 광뚱, 산뚱으로 대변되는 동서남북의 다양한 음식문화와 찬란한 문화유산, 자연경관은 많은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성들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미화된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남자답고, 기념일을 챙겨주며, 서프라이즈를 잘해주고, 고기를 굽고, 잘라주는 등 자상하지만 실제로는 결혼하고 나면 가장 많이 변한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고정관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고정관념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잘 변하지 않는 생각이며 지나치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뜻을 가지고 있고, 남성이나 여성, 인종,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은 사람과 문화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나타난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판단과 경험이 대부분 맞는다고 하는 프레임에 갇혀 타인의 진면목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의 모든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오류와 다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나와 다른 것은 모두 오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약관 20세를 보내고, 스스로 선다는 이립 30세를 지나, 40세의 불혹을 넘기고,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 50세를 살고, 귀가 순해지고 부드러워진다는 60세 이순을 넘기며, 70세 고희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사람들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부족함과 무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부족한데 어떻게 남을 판단할 것인가, 내가 무지한데 누구를 가르칠 것인가, 내가 죄인인데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나도 신의 용서를 받고 사는데 누구를 미워하겠는가.

성경의 인물 중에는 하나님이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신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우여곡절을 경험했던 요나와 거인장수 골리앗과의 싸움터에 나타난 소년 다윗을 보고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고정관념 속에 사로잡혀 다윗을 과소평가했던 ‘사울왕’이 나온다.

다윗은 이렇게 대답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양의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치려 하면 내가 그것의 수염을 잡고 그것을 죽였나이다.”

다윗은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다윗에게는 거인 골리앗이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 그가 제압했던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보았다.

고정관념 속에 사는 이들은 내 편, 네 편의 선을 긋고 사니 삶이 피곤하고 사람에게 쉽게 실망하게 되니 자신이 불행해진다.

그러나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린 자들은 이웃이 친구가 되고 삶이 유연하니 그로 인해 모두가 행복하다.

새로운 지도자를 맞고 수고한 지도자를 보내는 우리가 모두, 보수나 진보를 떠나 우리가 모두 가족과 친구들, 이웃과의 관계, 여야 정치인들 모두에게 고정관념의 눈이 아니라 긍휼한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가 흘러넘쳐 축복하며 감사하므로 모두가 행복과 참 자유가 넘치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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