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6:1~21)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다. 이때 다윗의 1순위는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일이었다.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1절), 즉 하나님 존재의 상징이었다.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온 후 그동안 산속 아비나답의 집에서 구별된 그의 아들 엘리아살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삼상 7장) 

하나님의 궤는 단순히 금박이 된 조각목 상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궤는 계시된 말씀을 담고 있는 드러난 신비였고, 언약의 상징이었고,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의미했다. 영성은 계시된 말씀, 즉 ‘신비’가 드러내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자의 ‘태도’를 말한다. 사무엘하 6장은 아비나답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궤가 입성하는 과정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중에서 삼만 명을 뽑아서 그들에게 온갖 악기를 준비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예배보다 더 적절하고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곧 예배는 멈추었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므로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가 죽은 것이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자기 집에서부터 궤의 이동을 맡았다.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2절)” 그런데 궤를 메어 오려던 이동방식이 바뀌었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훗날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의 궤에 대한 태도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대상 15:13)

분명 빼앗겼던 궤를 블레셋이 벧세메스로 돌려줄 때도 새 수레에 실었지만 하나님은 화내지 않으시고 번제까지도 받으셨었다. 그렇다면 웃사만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인가? 하나님에게 블레셋의 태도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갖는 태도는 중요하게 보셨다.

모세는 궤를 운반하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는데 그것에 손을 대면 안 되고 레위인들의 어깨에 메워야 했다. 이동을 맡은 제사장의 가문이 이것을 간과한 것이다.

삐에르 부르디외의 표현대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습성, ‘애비튀스(Habitus)’였을까? 무려 20년 동안 하나님의 궤가 머물렀지만 언약궤를 대하는 웃사의 평소 습관이 나온 것이다.

웃사가 죽자 궤 운반은 멈추었고 오벧에돔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석 달이 지난 후에야 다윗은 다시 언약궤 옮기기를 시도한다. 방식은 환원되었다.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 가면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얼마나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지 베에봇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때 왕궁 창문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다. ‘염치없이 자기의 알몸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다윗이 춤추는 자라면 미갈은 엿보는 자다. 다윗이 예배자라면 미갈은 관찰자다. 왕과 한 이불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같은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웃사의 20년처럼.

다윗은 채신머리없다고 핀잔하는 미갈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21절 b)
하나님은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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