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에서 너 자신이 부활하라. 너의 부활의 빛에서 이 땅과 이 역사를 부활시켜라. 만일 이 땅과 역사, 그리고 네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민들레 교회 이야기란 주보로 그 이름을 알렸던 어느 감리교회 목사(최완택, 1943-2019)의 불호령이다. 그는 “정말이지 예수 믿는다는 사람,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사람에게서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져 신앙인들의 부끄러움을 일깨우기도 했다.

▨… 한 평생을 시골교회 종지기로 살면서 글을 쓴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자신의 유지를 부탁하는 세 사람의 이름을 유서에 남겼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이 목사님의 이름이었다. 두 번째가 가톨릭 교회의 신부, 세 번째가 변호사의 이름이었다. 그의 삶은 권정생의 유서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소탈했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신앙의 자세에 있어서만은 서릿발이 따로 없었다.

▨… 그는 25년 만에 만난 신학동기들에게 네가 목회하는 교회에 나오는 몇 천명의 사람들이 너네 교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이냐고 물어봤어야 했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만나면 던지려고 늘 벼르고 별러왔던 물음, “너 정말 예수 믿니?”하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고 후회하는 마음을 글로 써서 남긴 적도 있다.(최완택, 『자유혼』) 신학동기 목사에게 ‘너 정말 예수 믿니?’라고 물으려 하는 목사가 그분을 제외하고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 기독교 신앙은 사도 바울의 증언(고전15장)처럼 부활신앙이다. 신학이라는 학문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부활 기사를 신앙고백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성결인들의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확신 위에 서 있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부활신앙에서 비롯되어짐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고 증언하고 있다.

▨… 만약 그대가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을 수 없다고 소리 지르는 정직한 현대인이라면, 도마의 정직한 쌍둥이 형제라면, 그런 그대를 위해 어느 순간에 부활하신 예수가 불현듯 찾아오셔서 두 손을 내미실 것이다. “보아라, 내 손의 상처를.” 이처럼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이사야 49:16) 도마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보지 않고도 믿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고 서릿발의 최완택 목사는 증언해 준다. 우리도 같은 증언을 하고 있음을 이 부활주일에는 꼭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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