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데요~♬”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많이 들었던 노래 가운데 한 곡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성경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같은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것이 있는데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후 1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정도로 믿음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약 2:23).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모습이었기에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본문의 말씀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첫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단번에 응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모습을 창세기 12장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너무나 익숙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너무나 엄청나고 충격적인 부르심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니까 쉽게 느껴집니다. ‘어디로 갑니까? 왜 갑니까? 가면 집은 있습니까? 가서 뭐해 먹고 삽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는 이런 수많은 질문들 때문에 쉽게 결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갈까 말까를 고민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단번에 응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갈 곳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주저 앞이 순종하는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결단력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현실의 상황보다 주신 약속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6).

그러나 아브라함의 현실은 대를 이을 자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아내 사라도 생리마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창 11:30, 1 8:11).  

그에게 있어서 현실은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불가능의 상태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현실적으로 100%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100% 신뢰하며 붙잡았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불가능한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약속에 대한 그 믿음이 현실과 약속과의 간격을 극복하는 힘이며 길입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때때로 현실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끝까지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단번에 순종하는 삶과 현실의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비록 현실이 힘겹고 어렵지만 믿음의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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