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으로 ‘살아가는’ 목사는 다르다!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이항심 교수의 『시그니처』(SIGNATURE)이고, 신앙 서적은 허천회 박사의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입니다. 이항심 교수의 책 『시그니처』의 소제목은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입니다.

이 책은 ‘진로심리학’ 입장에서 ‘일’을 생업(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 이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먼저 일을 JOB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일이란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자 먹고살기 위한 경제적 수단이라 여긴다. (중략) 일을 소명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일이란 자신의 정체성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PP. 53~54)

일터의 행복을 높이는 법에 관해 토론하면서 ‘소명을 가지는 것’ vs ‘소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구분합니다.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차를 주차장에 넣어 두는 것이고, 소명으로 살아가는 것은 좋은 차를 실제로 운전하며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다.”(PP. 155~156)

이항림 교수는 책 제목인 ‘시그니처(Signature)’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중략)이 책에서 시그니처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성, 즉 나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자기다움 중에 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강점을 말한다." (PP. 8~9) 허천회 박사의 책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은 920페이지로 양이 많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웨슬리’가 ‘존 웨슬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웨슬리안’이 ‘웨슬리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아니었습니다.

시그니처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과 소명으로 ‘살아가는’ 것에 차이가 있듯이, 그동안 저는 웨슬리 신학을 가지고 있었지, 살아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책이 제게 준 3가지 깨달음과 감동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존의 웨슬리에 관한 책들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을 설명하면서 ‘감리교 전통’ 아래에서 내용을 풀어 간 것이 아니라 16세기 ‘개혁주의 신학’으로 시작해서 18세기 영국에서 드러난 ‘개혁주의 신학의 한계와 모순 그리고 극복 과정’ 그리고 19~20세기 ‘현대신학’까지 동원하여 통전적으로 분석한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루터와 칼빈이 16세기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개혁주의 신학이 형성되었다면, 200년이 지나면서 18세기 영국에서 드러난 개혁주의 신학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웨슬리 신학이다.

그런가 하면, 웨슬리 신학은 19~20세기를 여는 신학이 됨으로써 현대신학까지 연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웨슬리안이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기독교신학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PP. 11~12).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웨슬리 신학의 본질을 웨슬리의 생애에 비추어서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셋째는 성결교 목사인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영국 메도디스트와 아메리카 메도디스트 그리고 성결교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분석하고 종합한 설명은 더 이상 자기다움의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도록 붙잡아 주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난 과연 소명을 가지고 있는 목사인가, 아니면 소명으로 살아가는 목사인가? 난 과연 웨슬리안이란 이름만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도인의 완전함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난 과연 성결교 목사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성결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목사인가’

시그니처, ‘자기다움’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성결의 소명만 ‘가지고’ 있는 목사가 아니라, 성결의 소명으로 ‘살아가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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