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9일 저녁과 20일 아침, 우크라이나 군사 인프라 시설에 장거리 정밀무기로 공격이 실시됐습니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우르라이나 침공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사용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은 음속의 10배 속도로 날아가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방어체계라는 것이 있기라도 할까.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이 러시아의 폭격과 미사일 공격으로 건물이 부서지고 불타는 영상은 매일 방영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어느 곳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포격이나 미사일 공격이 있었다는 보도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전쟁도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느 한 편의 침공이고 침략이지 맞붙은 전쟁은 아니지 않는가.

▨… 그 침공과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쓸수 있는 무기라고는 내던지는 목숨밖에 없는 우크라이나의 처지는, 1944년에 토머스 리가 그려 라이프지에 실었던 유명한 그림, ‘2000야드의 응시’를 떠올리게 한다. 리는 전투에 지친 팔라우 섬의 미군 병사의 휑뎅그렁하고 뻥하니 뚫린 듯한 눈을 그려 지옥일 수밖에 없는 전쟁의 무의미성과 인간의 자아상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었다.

▨… 지난 세월 한때 가톨릭 기독교는 ‘팍스로마나’에 안주하느라고 의로운 전쟁론을 주장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보니파체에게 말했다. “평화가 당신의 희망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전쟁은 필연성에 의해서만 실시되어야 하며,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속박에서 구출하여 평화롭게 살게 한다는 목적에서만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핵의 위협이 너와 나의 멸망을 예견할 수 있게하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푸틴의 말놀이에 버금가는 잠꼬대 아니겠는가.

▨…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 여의사 이리나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한국교회가 난민구호와 현장 구호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한국교회의 교회다움이 제대로 드러나는 구호활동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동시에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러시아 문화의 위대성을 증거해주는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등의 찬란한 유산을 지킬 러시아의 집단지성을 일깨워야 한다. 푸틴 이전의 러시아는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한 바탕이 있지 않는가. 그에 따라 러시아 선교의 절박성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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