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루터’
2022년 한국교회는 교회와 세상 모두를 개혁해야 합니다

오늘 소개할 일반 서적은 양태자 박사의『중세의 뒷골목 풍경』이고, 신앙 서적은 이길용 교수의『루터』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양태자 교수는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흥미롭게 읽었던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페스트’로 인하여 타락해가던 가톨릭교회의 뒷골목, 둘째는 ‘성물’과 ‘면벌부’가 대결하던 뒷골목, 셋째는 ‘농민’과 ‘영주’들이 싸우던 뒷골목 이야기입니다.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죽였습니다. 이때 교회 성직자들의 희생이 컸고, 자격이 미달되는 사람들을 성직자로 충원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타락해 갔습니다.

면벌부를 만들어 대놓고 교회 재정 충당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연옥에서 받을 고통을 없애준다는 ‘성물’을 모아 성지를 만들고 그것으로 장사하며 영주들도 부패해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루터의 이름을 걸고 시작된 ‘농민전쟁’은 영주를 지지한 루터의 배신으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루터의 이름을 걸고 농민전쟁을 시작했던 약 10만 명의 농민들은 루터에게 버림받아 명분을 확산할 수 없었다.”(188면).

중세시대의 뒷골목 풍경은 죽음, 타락, 부패 그리고 배신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이길용 교수는 서강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루터』 책의 부제는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으로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제 루터의 차원을 넘어서 중세에서 근대로 독일을 이끈 ‘레포르마치온’(Reformation)’ 곧 ‘개혁’의 주체인 루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읽은 ‘루터에 관한 책’ 중 최고의 것으로서, 특별히 ‘이신칭의’와 ‘만인제사장론’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이면서도 배경설명에 탁월합니다.

‘중세 뒷골목 풍경’에서 생긴 질문에 대한 책 『루터』 의 대답입니다. 첫째는 ‘페스트’와 종교개혁과의 관계입니다. 사제들은 직업의 특성상 페스트로 인해 가장 많이 희생된 이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제 없는 성당이 속출했고 졸속으로 신부를 양산하다 보니 사제 계급의 질적 하락과 교회의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루터는 그렇게 자격 없는 사제들에 의해 자행되던 왜곡된 신의 은총을 제대로 해석하여 전달하기를 원했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18면).

둘째는 ‘성물’과 종교개혁과의 관계입니다. 루터는 교황의 면벌부에 맞서서 싸웠습니다. 그 싸움에서 지지 않았던 가장 큰 힘은 프리드리히 3세를 비롯한 영주들의 협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프리드리히 3세를 비롯하여 성물을 많이 소유한 영주들은 면벌부가 성물의 강력한 대체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앞장섰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루터를 두둔하고 그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루터의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를 보호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신의 ‘실익’을 지킨 셈이다.”(153면).

셋째는 ‘농민전쟁’과 종교개혁과의 관계입니다. 루터는 ‘만인제사장론’을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개혁 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농민이 아니라 철저하게 영주 편에 선 보수적인 수도사였습니다.

“당시 농민들은, 가톨릭교회에 당당히 저항하며 만인사제주의를 외친 루터가 자신의 후원자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루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략) 농민 전쟁 동안 희생당한 농민은 약 10만 명에 달했다.”(232~233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2022년 한국 교회의 신앙개혁에 대하여 질문해 보았습니다.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루터보다 ‘신앙 개혁’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은 성공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페스트로 인하여 타락하고 부패했던 중세 교회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한 가운데 있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더 깨끗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면벌부로 돈을 축적하던 중세 가톨릭교회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더 정직합니까? 10만 명 농민의 죽음을 외면하던 루터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편에 서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의 목사들이 1517년 중세 교회와 종교개혁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2022년 한국의 뒷골목 풍경을 관찰하면서 신앙개혁의 대상인 교회와 세상을 ‘레포르마치온’(Reformation) 곧 개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