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간 길을 이제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이 시대, 이 땅의 최고지성인 중의 한 사람인 이어령이 임종 하루 전 출판사 열림원 김현정 주간에게 전화로 아직 미출간인 시집『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서문을 불러 주었다. 이어령은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딸 이민아 목사의 10주기인 3월 15일에 맞추어 시집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김수지‧조선비즈 기자)

▨… 어 쩌면 이 짧은 서시가 이어령이 이 땅에서 남긴 마지막 글이 아닐까. 그는 『흙 속에 저 바람속에』의 후기에서 다짐했던 바대로 생전에 많은 글을 썼다. 그 글들이 자신의 지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성장은 밤속에서, 그리고 폭풍속에 역리의 거센 환경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는 먼저 아퍼해야된다는 것”을 충족하는 글을 쓰려 했다. 그 아픔이 살아 있는 글이 서시가 아닐까.

▨… 이어령은 반기독교적은 아니었지만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노년에 맏딸 이민아 목사를 암으로 잃고서 기독교 신앙을 갖기로 결단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에는 딸이 살았던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를 질문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지성의 종착역은 영성”이라는 깨달음의 체험이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많은 목사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가슴에 새겨두기를 바라는 진리를 이어령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밝혔다.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게 다 선물이더라.” 일상적인 삶의 용어로 표현되었지만 기독교적 진리를 이렇게 체험적으로 표현해서 고백하는 것을 일러 우리는 ‘간증’이라고 일컫지 않는가. 이렇게신앙을 짧은 글 속에 담음으로 ‘미소짓는 우수’와 ‘기도하는 달관’(이인화)을 이어령은 갖출 수 있었던 것일까.

▨… 딸이 간 길을 이제 내가 간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이어령은 그 길이 영혼의 길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한다. 이점에서 서시는 이어령의 회심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성인은 무신론적이어야 한다는, 또 가나안 기독교인들이 지성적 신앙인의 표상아니냐고 쉽게 단정짓는 반기독교적 행태는 이제 깨뜨려져야 한다. 이어령의 회심이 지성과 영성을 대립의 개념으로만 파악하려는 사이비지성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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